[윤석원의 농사일기 178] 이대로 가면

  • 입력 2023.09.24 18:00
  • 수정 2023.09.24 20:45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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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하다. 가을이 온 듯하다. 그러나 낮엔 여전히 후덥지근하다. 과수 농사꾼에겐 최악의 날씨가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에 엽소 피해가 더 커지는 요즘이다. 올해는 아마 기후·환경변화를 실감하는 한 해인 것 같다.

이러한 기후·환경변화로 인한 생산의 어려움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금 우리 농촌의 농민 대부분이 농사만으로 먹고 살 수 없다는 데 있다. 올해처럼 사과 가격이 ‘금값’이 되면 소비자만 힘든 게 아니다. 생산자인 농민들도 마찬가지로 힘들다. 생산물량이 줄어든 까닭에, 매출액에 변동이 없으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것이고 평년보다도 소득을 못 올린 농민들도 많다. 솔직히 농민들도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무튼 이대로 가다간 어느 농민의 푸념처럼 이제 정말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한계상황에 다다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8년여의 농사경험과 주변 농민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면서 느끼는 감회는 암울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전체 농민의 약 5% 이내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업농이나 규모가 큰 농민, 특별한 아이디어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농민,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돼 있는 지역의 농민 등을 제외하면 농사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사실상 어렵다.

얼마 전 작은 저온저장고를 농장에 설치했다. 사장과 인부 한 명이 작업했다. 점심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인부로 오신 분은 경기도 수원에 살다가 5년 전 양양군 현남면으로 귀농한 현직 농민이었다. 농사를 지어 보니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데, 소득은 안 돼 현장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 일하면 20만원을 버는데, 농사로 20만원 벌려면 허리 부러지게 일해도 쉽지 않더라는 하소연이었다. 공감을 하면서도 이게 대다수 농민의 현실이겠다 싶어 안타까웠다.

내가 농사짓고 있는 양양군 강현면 강선리 윗골의 경우도 현재 농사짓는 농민들이 더 연세가 높아지는 10여년 후가 되면 아마도 농사 자체를 짓지 않는 땅으로 산지화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30년 전만 해도 윗골서 농사짓는 농민들이 열댓명은 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적도 상 아직도 윗골 대부분은 농지로 돼 있으나 농사를 짓지 않아 나무와 풀들이 우거져 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농사짓기 시작한 8년 전만 하더라도 9명 정도는 농사를 지었으나 현재 농사짓는 인원은 5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새 또 줄었다. 엄나무 농사지으시는 어른은 팔순이 넘으셨고, 감 농사를 지으시는 윗집 회장님은 팔순이 다 되셨으며, 나를 포함한 3명은 육칠십대다. 나를 포함해 우리가 더 나이 들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농사지을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소농과 노령농이 다수인 농촌지역일수록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대로 가다간 일부 대규모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농업만 살아남고 중소규모 농업·농민은 사라지는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게 될 것 같다. 미래의 농촌지역은 농사가 중심이 되는 공동체로서의 농촌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은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도시 같은 지역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대안은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고 답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 중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평생 고민만 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수년 내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방안을 정리하여 남길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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