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기후위기 시대, 농업재해대책법은 필수

  • 입력 2023.09.24 18:00
  • 수정 2023.09.24 20:45
  • 기자명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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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지난 20일 필자가 살고있는 충남 부여군에 폭우가 쏟아져 또다시 논과 밭이 침수됐다. 키우던 수박과 토마토, 딸기는 벌써 3번째 잠겼다. 2022년 홍수 피해에 이어 올해만도 3번째 호우 피해다.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이른 봄 이상고온으로 개화 시기가 빨라져 많은 과수나무의 꽃이 일제히 폈고 서리와 동해로 꽃이 얼어 과일이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또한 5월에는 우박으로 그나마 수정이 됐던 과일들과 노지 채소들이 피해를 봤다. 6월과 7월, 8월을 거치며 전국의 13개 지자체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만큼 `극한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도 컸다.

여름에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로수 잎이 누렇게 변해가는 것을 간간이 볼 수 있다. 기후위기가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의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여느 환경운동가는 올해의 더웠던 여름을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표현할 만큼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런 기후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자연의 변화에 대처하는 것 또한 무방비 상태에 가깝다. 이상기후의 시기와 위치를 예측할 수 없고 논과 밭을 들고 이사를 할 수도 없다. 이상기후가 나타나는 빈도 또한 잦아지며 극심한 가뭄과 극한호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이 스스로 피해를 극복하고 생활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추석을 앞두고 한 상자당 10만원이 넘는 사과를 보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사과 재배 농민이 존재한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농민에게는 피해 정도에 따라 대파대와 농약대가 지원되고 보험 가입 유무에 따라 피해액이 일부 보전된다. 올해에 한정해서 대파대와 농약대를 두 배로 인상하고 특별위로금을 지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재해를 입은 농민들은 아직까지 위로금과 대파대 등을 받지 못했다. 또한 보험에서도 피해의 범위가 넓고 금액이 많아 예상 피해액을 보상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보험을 들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피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내년에 일어날 기후위기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대파대와 농약대를 2배 인상하고 특별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올해에 한정된 것이다. 보험으로 피해를 보상받은 농민들은 보험료 할증이 예상되고 설사 보험을 새로 드는 농민들도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농민들의 피해는 불가항력적이고 점점 그 피해는 커지고 있는데 그것을 매년 농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한 번 피해를 본 농가는 그해 농사에서 나올 소득이 없기에 빚으로 생활하고 빚으로 다음 농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를 회복하기까지 3~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올해 부여의 상황처럼 한 해에 세 번씩이나 재해가 반복되고 내년에도 재해가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파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해나가는 방법과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농민들에게 피해를 직접 보상하는 방식의 새로운 농업재해대책법을 만들어 재해 속에서도 농민들이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야 한다. 민간 진영으로 이관한 농업보험이 아닌 실질 대책이 필요하다. 모든 산업계가 기후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피해를 농민만 감내하라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다.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후위기의 당사자라면 그 피해 보상 또한 구성원 전체의 합의 속에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 현실적인 농업재해대책법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이 새로운 제도를 만들 적기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먹거리 생산의 위기가 국가의 식량위기로 번지기 전에 농민들의 이탈을 막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농업재해대책법 제정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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