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㉚] 재미와 맛이 버무려진 시장, 청양오일장

  • 입력 2023.09.17 18:00
  • 수정 2023.09.17 18:52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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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오일장에 손으로 빚고 짚으로 묶어 말린 고사리를 들고 나온 어르신.
청양오일장에 손으로 빚고 짚으로 묶어 말린 고사리를 들고 나온 어르신.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어린 시절엔 아예 인연이 없던 곳이고, 일을 하면서도 그리 자주 갈 일이 없던 곳이 청양이었다. 몇 년 전 새로 부임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청양의 한 지역에서 김장 나눔 봉사를 한다고 하여 불려간 일이 마지막 방문이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낯선 곳인데 그런 청양엘 아직 여름 같은 가을 9월에 찾은 까닭은 고추와 구기자 축제를 하는 시기와 오일장이 맞물린 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기자가 많이 나는 곳이니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도 해서 마음이 동하기도 했다.

청양이 구기자의 산지로 유명한 것은 다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짐작하고 있는 매운 고추의 대명사 청양고추는 청양에서만 나는 고추가 아니다. 전국 어디서나 재배되고 판매되는 매운 고추의 품종일 뿐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청양에서 나는 고추라서 청양고추인 줄 알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청양군의 입장에선 그런 오해가 불러오는 어설픈 이야기를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9월 초 주말엔 청양에서 ‘청양고추구기자축제’를 하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튼 나는 그 축제가 무척 궁금하고 오일장도 보고 싶어서 청양으로 갔다.

 

 

이 무렵 청양장에는 저렴한 가을 수게가 많이 나온다.
이 무렵 청양장에는 저렴한 가을 수게가 많이 나온다.

 

 

오일장에 먼저 발을 들였다. 늘 하던 대로 시장 좌판에 앉아 국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마침 장터에 제철음식학교의 교육생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장터의 분위기를 살폈다. 가까이 보령이 있어 그런지 해산물의 비율이 큰 시장 같았다. 생구기자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기자꽃이나, 구기자꽃으로 만든 뭔가를 만났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기자꽃은 1년에 두 번 피니 가능할 수도 있을 텐데, 기대는 곧 사라졌다. 장터 어디에도 생구기자나 구기자꽃 비슷한 건 없었다. 청양오일장의 처음과 시작은 마치 꽃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해와 달리 유난히 꽃게가 많이 잡히기도 하고, 가을이라 수게들뿐이라 그런지 가격이 봄 같지 않고 많이 저렴했다. 그래도 나는 이 시기에 꽃게를 사지는 않는다. 살이 아직 차지 않을 때라 조리하고 나면 허망하기 이를 데가 없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 기다리면 살이 꽉 찬 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때 사면 된다.

 

 

옛 생활양식대로 말린 고사리를 들고 나온 어르신. 
옛 생활양식대로 말린 고사리를 들고 나온 어르신. 
동그랗게 빚어 짚으로 묶어 말린 고사리.
동그랗게 빚어 짚으로 묶어 말린 고사리.

 

 

자리를 옮겨 조금 가다 보니 보라색 상의를 곱게 입으신 분이 고사리와 고비를 놓고 파신다. 예전처럼 꾸덕꾸덕하게 말린 상태에서 손으로 비벼 동그랗게 빚은 다음 짚으로 묶어 말린 고사리를 보았다. 그렇게 아직 남아 있는 옛 생활문화를 만나니 마냥 반갑기만 했다. 같이 갔던 동료가 2묶음을 사고 있으니, 옆에 앉아 다른 채소 파시는 분께서 고사리와 고비를 열심히 설명해주신다. 평소에 익히 알고 있던 식재료라도 이럴 때는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 가끔 기가 막히게 유익한 정보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 상인께선 고사리와 달리 고비는 제사나 차례상에 쓰지 않는다고 하셨다. “왜 안 써요, 어째서요?” 하며 여쭈니 쭉쭉 뻗지 않고 동그랗게 말리기 때문이라 하신다. 자손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이 포자가 멀리 퍼지는 고사리는 쓰고 그렇지 못한 고비를 쓰지 않는다고 내가 들어왔던 것과는 좀 다르나 재미있고 좋았다.

 

 

청양에서는 청양고추를 소재로 지역축제가 열린다. 고추나 구기자를 풍부하게 만날 수 있지만, 이곳만의 특색을 찾긴 어렵다. 
청양에서는 청양고추를 소재로 지역축제가 열린다. 고추나 구기자를 풍부하게 만날 수 있지만, 이곳만의 특색을 찾긴 어렵다. 

 

 

장에서 구기자는 사지 못했지만, 그리고 이름에 걸맞는 청양고추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장을 도는 내내 만났던 상인들이 그 어느 장보다 따뜻했고 넉넉했다. 귀가 전에 다시 들러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행과 함께 청양고추구기자축제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다른 지역의 그렇고 그런 축제장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흥청거렸고 청양고추나 구기자를 과하게 포장한 제품들이 많았다. 그나마 좋았던 건 세계 각국의 고추 품종들을 모아 놓은 전시장이었다. 그곳에서 구기자의 다양한 품종들도 만났다. 평소에 구기자를 차로 만들어 마시기도 하고, 밥에도 넣고, 음식에도 활용하던 그냥 구기자의 다양한 얼굴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청양군에서는 일정한 지역의 땅에 공원을 조성하듯이 세계 각국의 고추들을 키우고, 구기자를 심어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드나들게 하다가 고추와 구기자의 수확철에 맞춰 좀더 의미 있는 축제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그냥 떠나기는 아쉬워 마른 구기자를 한 봉지 샀다.

다시 장터로 발걸음을 돌려 장터에서 거리로 나서는 길목에 있는 작은 밥집 ‘우거디’를 찾았다. 한상차림에 제철식재료를 이용한 반찬을 내는 곳이라 꼭 한 끼 먹어보고 싶어서다. 기대하고 간 이상으로 괜찮은 식당을 만난 기쁨에 따가운 햇살도 괜찮아졌다. 예쁘고 아름다운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주인장이 계획하고 있는 계절이 담긴 한식 한상차림을 만날 날을 기다린다. 다시 갈 이유가 생긴 오일장이다. 식당 하나가 지역의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한다기에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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