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어디가? 알바가!

  • 입력 2023.09.17 18:00
  • 수정 2023.09.17 18:52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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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실이 어디가냐? 알바요! 뭐? 언니한테 알빠요가 뭐여!’ 얼마 전 농촌 어르신들이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자리 연결 회사 광고가 있었다. 어르신들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시는 것을 재미있게 만든 광고였는데, 실제로 젊은 우리는 알바를 찾고 있다. 여름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대략 올 한 해 농사지은 것의 계산이 나온다. 후작으로 심은 작물은 어차피 도지나 투입된 비용으로 나갈 것이니 제외한다. 매년 계산을 해보면 이건 아닌데 싶어진다. 직거래를 하면 좀 더 남을 것 같지만 택배비 박스값 주고 나면 뭐가 남는지 잘 모르겠다. 주문받고, 정리해서, 실어 날라서, 포장해서, 택배 보내고, 잘 도착했는지 확인까지 하는 작업을 생각하면 직거래가 더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팔 곳이 없어서 마트나 공판장에 헐값으로 넘기고 나면 그런 생각도 쏙 들어가긴 하지만, 직거래도 들어가는 품을 생각하면 좋은 건가 싶다. 혼자 짓는데다 농지 구하기도 만만치 않아서 면적이 적으니 수익은 더 적다. 그럼 면적을 넓혀 볼까 계산을 해봐도 여전히 농사로 돈을 벌기란 답이 없는 일이라는 결론만 나온다. 그래서 8월이 지나고 가을철이 되면 이걸 계속 해야 하나 싶은, 요즘 말로 현실자각타임 `현타’가 온다. 청년창업농 지원금이 끝나서 온전히 자기가 번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 후배도, 귀농하려고 내려오면서 비상금으로 모아둔 돈이 슬슬 바닥이 나는 친구도, 남편 농사 수입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불안한 선배도 알바를 찾아 나서고 있다.

작년 상반기, 여러 사정으로 간간이 하던 일들을 다 정리하거나 혹은 정리당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밭일만 남았던 적이 있었다. 지난 글에 썼듯,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없으니 단체 활동하기엔 좋았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과 더불어 주어진 노동이 없으니 마음도 힘들어졌다. 왜 대책을 세우지 못했을까? 이 모든 어려움은 내가 게을러서 만들어진 결과인가? 이런 생각들로 심란해졌고, 정해진 시간에 나가서 일하고 제때 월급 받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그리고 밭에 나가서 앉아 있고라도 싶었다. 풀이라도 뽑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올해는 들어오는 일은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고 하고 있다. 매달 겨울을 감안해서 수입과 지출을 계획하고, 겨울에도 할 일을 만들어 보려고 지원사업도 신청했다. 춥고 힘든 겨울을 보내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농촌을 선택한 내 결정을 후회하게 될까봐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부부가 모두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당장 내 주변만 봐도 남편은 농사일을 하고 아내는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나, 식당일, 청소일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 농촌에도 알바가 필수가 되었고, 나도 그렇다. 이번 겨울 당장 지원사업이 시작되지 않으니 동생들이랑 겨울에 일할 계획을 세우고, 적당한 알바자리를 수소문하고 있다. 이미 시작한 친구들도 있다. 일자리를 구한 동생이 월급 받으면 한턱 쏘겠노라 큰소리 치면, 이래서 우리는 부자가 못된다고 타박하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어떻게든 이 곳에서 떠나지 않고 버티고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우리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농촌후계인력 육성 정책을 살펴보면 대부분 후계농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사로 먹고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보면서 알 텐데도 청년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돈을 마구 빌려주고 빚쟁이를 만든다. 6차 산업 육성이라면서 가공이나 카페를 차리라고 돈을 지원해 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창농이던 창업이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이 귀농보다는 귀촌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진입장벽이 높은 농업에 뛰어들라고 하기 보다는 우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농촌에 와서 살아 보라고 한다. 처음부터 농사 규모 키우지 말고, 알바도 하고 먹고살 길을 찾고 나서 농사를 고민하라고 얘기한다. 몇백 평도 안 되는 농사지으면 농민 자격이 없다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는 농업예산을 좋은 청년 일자리 만드는 일에 쓰면 되지 않을까? 늦더위로 아직 가을 찬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겨울 살림살이 걱정하는 농촌살이에 무엇이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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