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마을회관을 다시 돌아다니는 이유

  • 입력 2023.09.17 18:00
  • 수정 2023.09.17 18:52
  • 기자명 김성보(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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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농민회를 시작할 때가 2005년 30대 한창 팔팔하던 때이다. 면 지회에서 마을을 돌며 농민대회를 홍보하러 다녔다. 낮에는 농사일로 바쁘다보니, 밤이 되면 농민회 형들을 따라다니며 동네방네 마을회관을 돌았다. 농민가 차트를 걸어놓고 젊은 내가 선창을 하면 엄마들과 동네 형님, 형수들이 즐겁게 따라 불렀다. 우리는 그렇게 수입농산물 저지를 위한 서울농민대회에 버스를 대절해서 데모하러 올라갔다.

시간이 지나 2017년, 촛불항쟁으로 문재인정부가 들어섰다. 농민들은 농민헌법을 만들겠다며 1,000만명이 넘는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민주당 국회권력은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촛불항쟁의 국민 명령을 망각하고 탐욕과 안위에 빠져 실행하지 않았다.

식량주권은 수입농산물에 휘청거리고, 국내농산물은 투기자본의 유통구조 지배와 횡포에 짓눌렸다. 기후위기에 따른 각종 자연재해로 더 이상 농업과 농촌을 지켜내고 버티기가 너무나 힘겨웠다.

그래서 2018년부터 마을회관을 돌아다녔다. 농민 스스로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농민수당 조례제정운동을 전개했다. 마을회관에 모인 마을주민 대부분은 농민수당을 대환영했다. 삐뚤삐뚤 써 내려간 이름 석 자가 모여 결국 2019년 9월 30일 전라남도농어민공익수당 조례가 탄생했다. 그야말로 농민들이 직접 만들어 낸 최초의 농민법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전국 11개 광역시·도에서 도입했다. 마을회관과 우산각에서 시작한 농민수당이 이제는 대한민국 국회로 향하고 있다.

나는 농민수당을 처음 받던 그날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2020년 4월 지역농협 창구에서 농민수당 지역상품권을 받으며 농민회 덕분에, 진보당 덕분에 이런 돈도 타보네, 하며 고생했으니 밥 사먹으라며 밥값으로 3만원권 상품권 한 장 건네주던 동네 부녀회장님의 환한 미소. 이 모두가 다 엄니들 덕분입니다라며 서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데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한걸음 진보하기도 힘들었는데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다. 농업직불금 5조원으로 늘리겠다,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 전쟁도 불사하겠다, 일본의 핵오염수는 처리수다, 반국가단체가 활개를 치고 있다, MBC·KBS는 공정성을 상실했다며 민주주의 근본을 뒤집어엎으려는 무서운(?) 권력이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검찰청 특수통 캐비넷 사법권력을 용산 대통령실 캐비넷 통치권력으로 사유화하면서 정치권과 언론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건강한 시민사회 세력까지 반국가단체니, 공산전체주의라며 극우적인 이념논쟁과 프레임으로 국민을 색깔로 갈라놓고 거짓말과 역사왜곡으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용산 국가권력이 2024년 4월 10일 국회 입법권력을 장악해 공포정치를 시작하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그러나 무서울 게 없어 보이는 통치권력은 결국 더 무서운 국민의 저항을 불러왔다. 대통령권력을 쓰러뜨린 촛불항쟁이 바로 7년 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년 또다시 마을회관을 돌아다닌다. 이번에는 말로는 안 되겠다. 민중의 칼날을 날카롭게 세워야겠다. 언젠가 민중의 물꼬가 터지는 그날을 위해 마을회관에서 농민들과 함께 농민의 칼,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칼을 세우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오로지 칼의 정신으로 무장한, 칼에 미쳐버린 농민동지들과 함께 마을회관을 돌아다니자. 농촌에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농민을 만나러 마을로 들어가자. 꼬부랑 할머니도 농사일로 죽겄다는 아짐들도 이 시대에 너무나 소중한 농민이다.

“엄니, 칼 갈아드린께 좋지라.”

“좋고 말고, 이제껏 시멘바닥에 문데고 했는디 번들번들 빛나게 새것으로 만들어부렀네.”

“그란디, 쪼깐 미안한디 낫도 갈아줄랑가, 영감이 없으니까 깨 비고 콩 비는데 영 힘들구만.”

“그랍시다 언능 가져오씨요, 우리가 누구요 엄니들 자식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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