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운동가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 열려

농민운동 선후배·지인 등 60여명 참석

엄마·아내·활동가로 치열했던 삶 나눠

“여성농민운동사 꼭 쓰라” 유언처럼 당부

  • 입력 2023.09.17 09:00
  • 수정 2023.09.17 18:53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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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우리나라 여성농민운동의 대모인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일 경기도 모란공원 고인의 묘소에서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운동의 대모인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일 경기도 모란공원 고인의 묘소에서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운동의 대모인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일 경기도 모란공원 고인의 묘소에서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은 가족과 농민운동 선후배, 지인 등 60여명이 모여 엄마이자 아내, 활동가로서 고인의 치열했던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김영자 회장은 1966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전북 정읍농림고등학교에서 교사로 3년간 재직하다 결혼을 하면서 서울 상계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상계동에서는 남편인 고 김준기 회장과 비닐하우스 시설원예 농사를 하며 대학생들의 실습터를 제공하거나 농업기술을 지도하는 등 농민운동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1975년에는 지역탁아소인 ‘원터 어린이집’을 운영해 어머니 자치활동을 이끄는 등 ‘여성’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에 매진했다. 1977년에는 한국가톨릭농민회 내에 ‘가톨릭 농촌여성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3·4대 회장도 역임)을 지냈다. 가톨릭 농촌여성회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인 여성농민 단일조직으로 의미가 깊다. 이후 1989년 전국여성농민위원회를 거쳐 현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 60개 군 조직 결성) 출범의 밑거름이 됐다.

김영자 회장은 가톨릭 농촌여성회 회지에 “농촌여성도 인간이다”라면서 “농가의 주부로서 의무와 희생만 강요해왔는데 이제는 농촌여성의 권리도 찾고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여성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온가족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가정에서 존중받고 사람대우 받는 여성이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어찌 그대로 참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기고를 하는 등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농촌사회에 ‘여성농민’의 권리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 왔다.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하면서는 지역운동에도 앞장섰고 1989년 큰우리소비자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등 농촌운동과 생협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4남매를 키우는 엄마로, 농민운동·통일운동을 하는 남편의 아내로, 또 귀감이 되는 활동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김 회장은 1993년 3월 돌연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으나 그 해 11월 50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그로부터 30년, 모란공원 김영자 회장 묘역에 모인 이들은 ‘자기 욕심 없고 미소가 해맑았으며 누구든 존중하는’ 그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마지막까지 같이 일했던 고은실씨는 “회의할 때 회장님의 모습이 사진을 찍은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면서 “회장님은 회의를 할 때도 일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도 그때 30대 초반이었는데, 젊은 실무자들이 얼마나 똑 부러졌겠나. 옳은 말 거리낌 없이 다 했다. 회장님은 나무랄 만도 하고 방향을 틀 만도 한데, 다 들어줬던 것 같다. 한 번도 야단맞지 않고 일했다”고 묵묵히 헌신해 귀감이 됐던 모습을 설명했다. 이어 “돌아가시기 하루, 이틀 전에 병원으로 가 뵀다. 많이 아픈 상황인데도 앉으셔서 저를 탁 보더니, ‘여성농민운동사 꼭 써야 해’ 이런 말을 하셨다. 깜짝 놀랐다. 가슴에 항상 남아있는 말이다. 이 분이 가정도 있고 아이들도 넷이나 키우면서 활동을 하니 쉽지 않은 일상을 살았는데, 마인드가 얼마나 공적인지, 당신이 책임을 맡아 이루고자 하는 것은 고집스럽게 끝까지 쥐고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운동의 대모인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일 경기도 모란공원 고인의 묘소에서 열린 가운데 고은실씨가 함께 활동하면서 본 김영자 회장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운동의 대모인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일 경기도 모란공원 고인의 묘소에서 열린 가운데 고은실씨가 함께 활동하면서 본 김영자 회장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녀인 김시연씨도 ‘엄마 김영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이야기했다. “엄마가 너무 바빠 저한테 동생들 맡기고 많이 다니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내가 막내를 업고 학교에 갔을 정도다”면서 “지금 엄마보다 5년을 더 산 아줌마가 돼 보니 엄마가 얼마나 아깝고 불쌍한지 모르겠다”고 함께 했던 24년의 시간을 꺼냈다.

이날 추모식은 김하정(셋째)씨의 사회로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김영자 회장에 대한 퀴즈를 내고 맞추면 선물을 증정해 웃음소리도 커지는 시간이었다.

추모식 참가자들은 ‘50대라는 짧은 인생이지만 참 열심히 산 대단한 분’이라고 김영자 회장을 기억하면서 ‘주신 가르침 대로 살겠다’는 다짐도 나눴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운동의 대모인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일 경기도 모란공원 고인의 묘소에서 열린 가운데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운동의 대모인 김영자 회장 30주기 추모식이 지난 9일 경기도 모란공원 고인의 묘소에서 열린 가운데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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