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신자유주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 입력 2023.09.10 18:00
  • 수정 2023.09.10 19:13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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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10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멕시코 칸쿤에서의 농민투쟁은 역사적인 투쟁으로 남았다. 당시 칸쿤에서는 WTO 제5차 각료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이경해 열사는 자유무역, WTO에 반대하는 강경한 뜻을 목숨으로 증명했다.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람들과 이경해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사람들이 얼마 전 한 자리에 모였다.

가슴 아픈 과거를 되새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를 잊지 말아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시장개방 20년을 고찰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20년 전 이경해 열사는 자신의 몸을 던져 WTO에 격렬히 대항했고, 그의 뜻은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칸쿤 각료회담이 끝내 무산되면서 농민투쟁은 승리로 막을 내렸고 20년 전 그날의 충격은 수많은 농민운동가들의 삶을 바꾸었다. 이경해 열사의 숭고한 뜻은 전 세계 농민들의 연대를 더욱 끈끈히 만들었고, 전 세계 농민들의 연대투쟁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농민들은 전 세계 민중과 농민의 권리를 짓밟으며 양극화를 불러오는 세계화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 칸쿤에 모였다. 한국에서만 200명의 투쟁단이 꾸려졌고, 36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을 감내한 그들은 머나먼 낯선 땅, 칸쿤에 모였다. 칸쿤 농민투쟁은 역사적인 투쟁이었고 세계적인 농민조직인 비아캄페시나와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 준 투쟁이었다. 하지만 이경해 열사가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막으려고 했던 세계화의 흐름은 끝끝내 그 물길을 되돌리지 않았다.

초국적기업과 식량수출국에서 주장했던 세계화에 의한 공정한 경쟁구조는 애당초 이룰 수 없었다. 세계화로 소수는 더 번영했고 다수는 더 빈곤해지며 양극화는 심화됐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 인구를 먹여살리는 농민들은 여전히 상당수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고 소농들의 삶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양자주의 FTA에 집중한 한국은 FTA 강국이 됐다. 우리나라는 농민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뤘고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섰다. 하지만 현 정부에게 농민들의 희생은 그저 과거의 잊혀진 추억일 뿐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무너지고 있는 농업을 회생시키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성장지상주의는 사람보다는 자본에 의지해 시장을 좌지우지했고 중소가족농을 기반에 둔 우리나라 농업은 급격히 붕괴됐다. 세계화는 농민들의 권리를 훼손했고 기업의 이익 증가에 중심을 두었을 뿐 우리 모두의 식량권을 보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신자유주의 무역체계도 종말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전 세계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위기는 현재 농식품 무역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무역체계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대안을 고민해왔다. 이경해 열사의 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전 세계 농민들은 한 손에는 투쟁을 한 손에는 대안을 놓치지 않았다. 비아캄페시나는 식량주권에 기반한 무역체계를 세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논의하며 우리가 원하는 국제무역 원칙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왔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이 농민권리선언이었다. 농민권리선언은 투쟁의 성과이며 앞으로도 농민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그 길 맨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식량주권과 농민권리선언이 기반이 된 무역체계를 전 세계 농민들과 연대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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