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77] 설레임

  • 입력 2023.09.10 18:00
  • 수정 2023.09.10 19:13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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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조생종 사과인 고이조라, 썸머킹 등의 수확이 끝나고 요즈음은 중생종인 홍로, 아리수, 루비에스 등의 사과가 도매시장과 공판장은 물론 인터넷 쇼핑몰에서 거래되고 있다. 금년엔 모든 농사꾼이 그렇듯 사과 농사도 1년 내내 고난의 연속이었다. 봄에는 냉해로, 여름엔 긴 장마와 폭우와 폭염으로, 가을 들어서는 탄저병과 갈반병 등의 만연으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정말 힘든 한 해였다. 생산량은 30~40%는 족히 줄어든 것 같고 사과 품위도 좋지 않으나 가격은 상당히 높게 형성되고 있다. 관행농사로 지은 사과도 상급은 1kg에 1만원을 훨씬 넘고 있다. 사과 3~4개가 1kg 정도 되니 개당 3,000원이 넘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생산자인 농민의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농사를 평년수준으로 잘 지은 농민들은 가격상승으로 모처럼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피해를 많이 본 농민들은 가격이 좋아 봐야 내다 팔 물건이 없으니 남의 일이 되고 만다. 한편으로 생산량이 줄었어도 가격이 높아 매출액은 비슷한 농민들도 있을 것이다. 농민 개인별로 보면 금년도 사과가격이 모처럼 좋다고 하지만 이와 같이 농민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격이 높아 사과 매출액이 늘었다고 해서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매출액에서 고정비, 유동비, 인건비, 퇴비 등 농자재비 등을 제외한 순수입이 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작은 유기농 사과 농장의  시나노골드(황금사과)는 8월 초까지는 잘 버티다가  8월 하순에 일부 옆소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앞으로  한 달 정도만 잘 버텨 주면 기대했던 물량의 약 절반 정도는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 얼마를 판매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하순 무렵에는 후지도 조금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8년 전 처음 식재했던 알프스오토메 품종을 실패하고 수종을 바꾼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소량이지만 유기농 사과를 수확·판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2평짜리 저온저장고도 마련해 놓았다. 그 밖에도 택배용 상자, 속지, 스티커, 테이프 등도 친환경 자재로 준비하고 있다. 모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무엇보다 앞으로 한두 달 동안 폭풍이나 폭우 같은 재해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고민은 판매 가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물량이 많다면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공판장 같은 곳에 낼 수 있는데 이때 가격은 경매 등에 의해 결정됨으로 생산자가 직접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 판매 물량이 매우 적으니 SNS를 통해 직거래로 판매할 생각이어서 가격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소규모 유기농 사과 농사는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환경과 생태계 보호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인간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 무조건 가격이 비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요자인 소비자가 이 가격을 지불하려 할 것인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이해하고 나도 만족할 수 있는 유기농 사과 가격을 얼마로 해야 할지를 어렵지만 곧 결정해야 할 것 같다.

4년 전 약간의 무농약 알프스오토메를 판매해 본 적은 있으나, 품종을 바꾼 후 본격적으로 유기농 시나노골드와 후지를 판매하는 건 다음 달이 처음이라 SNS에 의한 직거래가 얼마나 잘 될 것인지, 구매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8년간 농사지으며 배우고 노력한 결과물이므로 약간의 설레임도 있음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래도 수확의 계절 가을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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