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홀대받는 시대여도 농심은 이삭 줍는 들녘에

  • 입력 2023.09.10 18:00
  • 수정 2023.09.10 19:13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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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더위가 찾아온 지난 4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삼화마을 들녘에서 콤바인을 운전 중인 이창호씨가 추수한 나락을 톤백에 붓자 여성농민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더위가 찾아온 지난 4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삼화마을 들녘에서 콤바인을 운전 중인 이창호씨가 추수한 나락을 톤백에 붓자 여성농민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창호씨와 여성농민들이 앞으로 추수할 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창호씨와 여성농민들이 앞으로 추수할 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추수 순서를 기다리며 아스팔트에 앉아 콤바인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농민들.
추수 순서를 기다리며 아스팔트에 앉아 콤바인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농민들.
김규태씨와 외국인노동자가 논둑에 미리 베어 놓은 나락을 콤바인에 넣고 있다.
김규태씨와 외국인노동자가 논둑에 미리 베어 놓은 나락을 콤바인에 넣고 있다.
김규태씨가 콤바인이 닿지 못한 농수로 인근의 나락을 낫으로 베고 있다.
김규태씨가 콤바인이 닿지 못한 농수로 인근의 나락을 낫으로 베고 있다.
한 여성농민이 논둑에 올려놓은 나락을 들고 콤바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 여성농민이 논둑에 올려놓은 나락을 들고 콤바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일 년 농사일을 마무리해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 의미로 하는 거지. 수확의 기쁨이 있고 그런 건 아녀. 쌀을 귀하게 여기는 시대가 아니잖아.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쌀이 홀대를 받으니까.”

한 해 농사의 결실을 맺는 자리, 추수에 나선 농민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알곡이 여물어 고개 숙인 벼의 누런 빛은 여전히 풍요롭건만 이 황금들판을 바라보는 농민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삼화마을. 지난 4일 산내면에서 가장 먼저 추수를 시작한 이곳 들녘이 나락을 베는 콤바인 소리로 요란하다. 이 마을에서 3,700평 규모로 논농사를 짓는 김규태(71)씨 논이다. 이 산골까지 콤바인을 끌고 와 추수에 나선 이는 ‘산내일꾼’으로 통하는 이창호(49)씨로 올봄 모내기 대행부터 추수까지 이렇다 할 농기계가 없는 마을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이다.

이씨가 네 마지기 남짓 경지 정리된 논을 서너 바퀴 돌며 벼를 벤 뒤 콤바인에 담긴 나락을 톤백에 쏟아내자 김씨가 조금씩 비어가는 들판을 보며 한 마디 건넨다. “처음엔 (농사가) 잘 됐다 싶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쭉정이가 많고 그래. 작황이 작년만도 못할 것 같애. 올해 날씨가 비도 잦고 그러더니….”

톤백에 담긴 나락은 인근 농협에 산물벼로 바로 출하한다. 지역 쌀값이 정해지면 출하량에 따라 정산받는 방식으로 농민들 입장에선 건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돼 한결 수월하다. 허나, 아직 햅쌀 가격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농기계 작업비와 그간 사용한 각종 농자재비를 제외하면 벌써 ‘남는 게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추수 작업을 대행한 이씨도 “작년엔 1ha 평균 톤백으로 14개 정도 나왔는데, 올해는 11개 정도다. 수확량이 20%는 감소한 것 같다. 나락값이 좋아야 어르신들이 좀 웃으실텐데”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추수에 나선 농민들은 비어있는 들판에 떨어진 이삭을 일일이 줍고 일의 선후를 따질 정도로 열정적이다. 이씨가 여러 차례에 걸쳐 콤바인에 담긴 나락을 톤백에 쏟아내기 위해 논둑 가까이 오자 그때마다 이날 추수가 예정된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든다. 각자 손짓을 하며 덩달아 목소리도 커지는데 “내 나락은 언제 비냐”는 소원수리가 대부분이다. 이날 추수 대부분이 같은 마을 윗논, 아랫논, 옆논 등이라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해도 추수에 나선 농심은 논에 머물러 그 자리를 쉬이 떠나지 않는다.

자식 같은 농사를 제대로 갈무리하겠다는 마음이기에 농민들에겐 여전히 쌀이 귀하고 소중하건만, 이 시대와 정부는 우리네 농민들과 쌀을 천덕꾸러기로 취급하며 홀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 되물어보고 반성할 일이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바라 본 산내면 올해 첫 가을걷이 풍경.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바라 본 산내면 올해 첫 가을걷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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