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슬픈 미나마타’보다 더한 공포

  • 입력 2023.09.10 18:00
  • 수정 2023.09.10 19:13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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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햇살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공격적이다. 다시 장마가 시작된 것처럼 3일째 비가 오고 있고 앞으로 3일 동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다. 1시간에 쏟아진 비가 20mm가 넘어도 더 이상 놀랍지 않고 자주 겪는 현상이 되었다.

겨울배추를 파종해서 본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름 후에는 정식을 해야 하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 달린다. 수시로 난동을 부리는 날씨 때문에 농사가 더 어렵고 감당해야 하는 수고와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위기를 겪으며 어찌어찌 농사를 지어놓으면 무관세 수입이라는 신종수법으로 농산물 가격을 때려잡는 통에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배추 모종을 솎거나 물을 주면서 혼자 일할 때는 옆구리에 찬 벨트지갑 안의 핸드폰으로 라디오를 듣는데, 매시간 뉴스를 알려준다. 일본에서는 방사능 오염수를 기어이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대통령은 일본 정부를 옹호하는데 무척이나 적극적이다. 좌파 인사들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며 그들과 단호히 싸워서 자유주의를 지키겠단다. 자신의 신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용공분자를 색출한다며 마구잡이로 방망이를 휘둘러야 직성이 풀릴 텐데 뜻대로 되지 않는지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거품을 내뿜는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퍼붓는 일본을 규탄하며 분노해야 하거늘 반대하는 우리나라 국민한테 잔뜩 화가 나 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1906년 일본 미나마타에 질소공장이 세워진다. 몇 년 후부터 밤낚시를 하던 어부들은 질소공장의 배수구에서 검고 파랗고 빨간색 같은 원색의 무슨 기름 덩어리가 방석 정도의 크기로 흘러나오는 것을 무심히 보게 된다. 어부들은 물고기들이 이상하게 헤엄치는 모습, 바다 속 모래나 바위에 부딪혀서 제 몸을 뒤집고 뒤집길 반복하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이어서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쥐약을 먹은 것처럼 팔짝팔짝 뛰거나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고 바닷가 주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던 들고양이들도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멸!

1954년부터 미나마타에서는 사지경련 운동실조성 마비와 언어장애를 주된 증상으로 보이는 원인불명의 질환이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전조증상이나 발열 등의 일반 증상도 없이 지극히 서서히 발병한다. 먼저 사지말단이 저리는 느낌이 들다가 시간이 갈수록 물건을 쥘 수 없게 된다. 단추를 채울 수 없다, 걸으려고 하면 자꾸 넘어지고 달리지 못한다. 아이의 혀 짧은 소리처럼 말을 한다. 종종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귀도 멀어진다. 음식물을 삼키기 어렵다. 즉, 사지마비 외에 언어, 시력, 청력장애 등의 증상이 동시에 혹은 전후로 나타난다. 이들 증상은 다소 일진일퇴는 있지만, 차츰 악화되다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3개월). 이후 점차 호전을 보이는 환자라도 대다수 장기간에 걸쳐 후유증으로 남는다. 합병증으로 폐렴, 뇌막염 증상, 조급증이나 영양실조, 발육장애 등. 후유증으로는 사지 운동장애, 언어장애, 실명과 난청 등의 시력장애.

환경오염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태아, 유아, 노인, 병자 등 생리적인 약자들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에 의지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슬픈 미나마타’는 상상과 허구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 아닌 다큐멘터리 유형의 소설이다. 질소공장에서 흘려보낸 오염 물질 때문에 미나마타병을 진단받거나 죽어가기까지의 과정은, 처절한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미나마타병은 차라리 조족지혈이었거나 과거의 슬픔이었다면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고 재앙이다. 공포는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을 때, 극에 다다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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