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사과, 눈으로 먹지 말고 맛으로 먹자

  • 입력 2023.09.03 18:00
  • 수정 2023.09.03 19:37
  • 기자명 권혁정(경북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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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정(경북 의성)
권혁정(경북 의성)

곧 추석이 다가온다. 사과 농가들은 추석 대목을 앞두고 조생종 사과 수확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수확에 앞서 돌아보면 봄철 냉해와 우박, 여름철 수해와 태풍까지 기후위기 속 극심한 자연재해를 겪었다. 또한 탄저병과 갈반병이 급속히 퍼져 농사짓기 참 힘든 한 해였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어릴 적 흥얼거렸던 구전 동요다. 이 동요에도 나오듯이 우리는 사과가 빨갛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다. 자연의 이치대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면 사과는 자연스레 빨갛게 색이 난다. 자연이 주는 빨간 사과는 맛과 향이 좋다. 그렇기에 사과 농가들은 사과를 빨갛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 많은 노력들 중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조금 더 빨리 색을 내기 위해 호르몬 제제를 치거나, 과수원에 빛을 반사시키는 필름을 깐다. 또한 사과를 가리고 있는 잎을 하나하나 따 준다. 어느덧 이런 것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습관화돼 버렸다.

아직 숙기가 덜 된 사과를 빨갛게 색만 내기 위해 치는 호르몬 제제는 사과의 맛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첫 출하되는 사과가 겉만 빨갛고 맛이 없으면 11월 후지까지 영향을 받는다. “올해 사과는 맛이 없더라.” 결국 우리 무덤을 우리가 파는 것이다.

사과농가에는 ‘보약’ 산불예방에는 ‘쥐약’ 반사필름, 과연 보약일까? 어찌 보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내가 키운 사과를 밑둥까지 빨갛게 물들여 한 푼이라도 더 소득을 올리려는 노력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우리는 올해 엄청난 자연의 힘을 몸소 겪고 있는 농민이다. 반사필름은 환경적 측면에서 많은 폐해를 가져온다. 또한 제대로 수거가 안 된 필름이 겨울철 산불의 원인이 돼 큰 재난을 겪은 경험도 있다.

사과 잎 따기도 하지 말자. 하나의 사과가 맛과 향을 내기 위해선 잎이 60~70개 정도 필요하다. 사과가 빨갛게 물들어 가는 시기 사과에 붙은 잎 하나가 그늘을 만들어 그 부분은 빨갛게 색이 들지 않는다. 사과가 맛이 있으려면 잎이 필요하지만 색을 내기 위해 잎을 따낸다. 겉은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잎을 따 냄으로서 당도나 맛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것들은 농민 스스로 변해야 하는 것이지만 결국 소비자의 인식 전환도 동시에 필요한 대목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 그대로의 사과를 먹는 것이 좋다. 사과 밑둥까지 빨갛게 돼야 한다는 소비 심리를 바꿔야 한다. 중간 유통 상인이나 중도매인들 또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명절 선물용 과일은 굵고 색이 완전 빨간색이어야 한다는 인식 탓에 농민들은 강제 착색과 반사 필름을 깔고 사과 잎을 따기 위해 수백만원의 비용을 들이고 인건비를 들인다.

사과를 눈으로 먹지 말고 맛으로 먹자. 잎을 따지 않아 한 부분이 덜 빨갛더라도 숙기가 지나 제대로 익은 사과는 맛과 향이 좋다. 자연 그대로의 제철 과일이 우리 모두의 건강과 생태 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의 건강과 지구의 환경, 농민들의 생산비 부담 완화를 위해 소비자와 유통인들의 인식 전환과 농민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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