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2100년, 멀지 않았습니다

  • 입력 2023.09.03 18:00
  • 수정 2023.09.03 19:37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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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너무도 따뜻했던 4월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안 심은 고추를 남들은 다 심으니 조바심이 날 정도였습니다. 좀 일찍 심은 고추가 잘 자라 가는데 갑자기 5월 중순에 며칠 추운 날이 계속 되었고 많은 밭이 냉해를 입었습니다. 사람들은 냉해 입은 고추를 뽑아 다른 작물을 심기도 하고 고추모종을 다시 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 쓰며 키워놓은 고추가 계속되는 비에 병에 걸려 죽어갔습니다. 마을에서 지금까지 고추밭 망가지지 않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올해입니다. 고추농사가 망가지니 고추 값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1년 먹을 고춧가루를 어떻게 구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우리집은 고작 고춧가루 구할 생각으로 전전긍긍하는 수준이지만 통화를 하거나 회의를 하면서 만나는 여성농민들의 이야기는 어마어마합니다. 전북의 여성농민은 벼농사 짓던 논에 콩을 심었는데 물에 잠겨 올해 논농사를 망쳤다고 합니다. 정부가 올해 처음 시행한 전략작물직불사업 대상 작물로 논콩을 심었는데 전북의 논콩 농사를 지은 논 대부분이 침수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괴산에 사는 분은 집에 물이 차버려서 망연자실한 이웃들을 보고 어떻게 하나 심난한 목소리였습니다. 물이 집을, 과수원을, 하우스를, 농기계를 파괴하고 누군가들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목숨까지 앗아갔습니다. 올해 우리가 겪는 이런 현상을 보면 그간의 냉해나 장마의 수준을 뛰어넘은 기후재난,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편리를 위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가 벼랑 끝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온실가스를 계속 내뿜고 있는데 이 이산화탄소는 100년을 넘게 산다고 합니다. 100년을 넘게 사는 이산화탄소를 계속 내뿜으면서 지구의 유리벽을 더 두껍게 만들었고 지구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으며 기후위기의 여러 가지 모습들로 우리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각국 전문가들은 지구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의 섭씨온도에서 1.5도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이미 1도가 올랐고 이제 0.5도가 남았는데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1.5도 상승까지 조금의 시간이 남았고 기후위기는 벌써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8년 기상청에서 발표한 한반도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추세대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경우 2100년에는 지금보다 약 4.4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2100년의 여름일수는 약 170일이니 일 년의 반절이 여름이고 두 달을 열대야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2100년, 먼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손·자녀들이 먹고 자고 웃고 일하며 살아가는 시간들입니다.

지금의 추세대로 계속 온실가스를 내뿜는다면, 지구의 온도가 계속 오른다면 과연 인류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어떤 분은 1억년 전 가장 기세등등했던 공룡의 이야기를 합니다. 공룡도 기후변화로 멸종했는데, 지금은 가장 경쟁력이 큰 인류이지만 기후위기 속에서 인간도 공룡처럼 될 가능성이 크고 인류가 멸종하면 지구에는 그 환경에서 경쟁력이 센, 다른 종이 우세를 점할 것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합니다.

돌아보면 코로나19도 기후변화로 인한 바이러스의 확산이 원인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극지방 빙산에 냉동돼 있다고 합니다. 지구의 온도가 오르면 빙산 속에 얼어 있던 바이러스도 퍼져 나갈 것이고 우리는 코로나19보다 더한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더 무서운 이야기도 들립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기후 말고 우리가 변하자’라고 쓴 종이상자를 들고 있는 어린이의 사진을 봅니다. 지구를 살리자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손•자녀들을 위해 나라도 종이컵 안 쓰고 생수 안 사먹고 휴지나 물티슈 대신 행주와 수건을 써야지, 물과 에너지를 아끼고 새 물건을 조금만 사야지, 새깁니다. 다짐합니다. 2100년,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같이 종이컵 안 쓰고 생수 안 사먹고 행주와 수건을 쓰고 물과 에너지를 아끼고 새 물건 사는 것을 줄일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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