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76] 그리운 금강산

  • 입력 2023.08.27 18:00
  • 수정 2023.08.27 20:53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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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날은 무덥고 계속 비는 오고 습하다. 사과 농사짓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마음도 천근같이 무겁다. 한두 달 후면 시나노골드와 후지를 수확해야 하는데 팔만한 물건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한아름이다. 아무리 유기농 사과라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내놓으려면 어느 정도는 그럴듯 해야 한다. 벌레가 갉아 먹거나 찍어 놓으면 사과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고 울퉁불퉁하다. 이런 못생긴 과일이 30~40%는 될 것 같다. 저온 저장고에 넣었다가 가공하거나 식구들이 먹을 수밖에 없다. 농사란 일상이 긴장의 연속인데, 수확기가 다가오니 더욱 긴장된다.

거기에다가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무슨 왕조시대로 되돌아간 듯 100년은 뒤로 간 느낌이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고 해도 오히려 앞잡이 노릇을 하며 찬성하는 괴상한 사람들이 판을 친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됐는지 나이 먹은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염치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보기 힘든, 국가와 국민은 보이질 않고, 오로지 자리와 권력에 눈먼 자들이 지도자랍시고 저러고 있으니 날도 더운데 더욱 열불이 난다.

그렇다고 농부가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오늘도 예초기를 돌리다가 농막에 앉아 잠시 쉬는데 느닷없이 기차여행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양양역에서 북녘땅으로 말이다. 세상이 답답하고 한심하니 별생각이 다 든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나이 먹을수록 감상적으로 된다던데 나이 탓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은퇴 후 고향 양양으로 귀농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동해북부선이 완공되고 북으로도 연결되면 양양에서 열차 타고 금강산과 북녘의 동해안을 여행해 보고 싶어서였다. 금강산 여행이 가능했던 시절 금강산을 가보았고, 통일농수산이 주관하는 남북농업교류차 금강산 아래 농촌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금강산이야  세계적인 명산이니 그 감동·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군사분계선을 지나 금강산으로 버스 타고 올라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동해안의 바닷가 풍광이 내가 어릴 때 뛰놀던 고향 바닷가와 너무나 닮아 있어 놀랐다. 지금의 고향 바닷가처럼 아스팔트 해안도로도 없고,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도 없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백사장과 바닷가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버스 안에서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작은 역에도 다 서는 완행열차를 양양역에서 타고 속초, 간성, 제진, 그리고 북녘의 동해안인 감호, 금강산, 안변, 원산, 고원, 함흥, 흥남, 청암, 라진, 물골, 두만강까지 모든 역에서 내려 1박씩 하며 다녀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 소원 중 하나인데 지금 당장 떠나고 싶으니 웬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나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때 집은 양양에 있었지만 금강산 자락에 소재하고 있는 금강중학교를 다니셨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금강중학교도 한번 가보고 싶다. 부친이 살아 계신다면 모시고 가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제 막 칠순을 넘긴 내가 살아생전에 이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초조함인 것 같기도 하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보다 더한 적으로 살아온 지 벌써 78년여가 지났건만, 남과 북은 전쟁이라도 치를 듯이 적대감만 키우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누구를 위한 적대감인지 모르겠다.

다음주엔 해수욕장으로 붐볐으나 요즈음은 좀 한가로워진 양양·속초·고성의 바닷가를 따라 통일전망대까지라도 다녀와야겠다. 승용차를 타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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