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업인? 농민임을 잊지 마라

  • 입력 2023.08.20 18:00
  • 수정 2023.08.20 18:23
  • 기자명 김덕수(강원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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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강원 춘천)
김덕수(강원 춘천)

농사짓겠다고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사무실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땅을 구하고 작물을 선택하고 비료 구입하고 하던 때가 2007년이었으니 벌써 17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들어가려던 마을은 골프장이 2개나 들어서 농지가격이 몇 배로 올랐다. 땅을 구입할 엄두도 못 낼 뿐더러 임차하기도 꽤나 힘들었다. 그러니 그 마을에는 들어갈 빈집도 구하기 힘들어 시내에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무실 시절 운동했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시민사회단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농민회에서 나를 찾았다. 농민회원이긴 하지만 회장님, 사무국장님은 대농이다 보니 낮 시간에 일정을 소화하기란 힘든 상황이어서 자꾸 나에게 연락이 오곤 했다. 이제 막 농사에 적응해야 하는데 마음 같아선 안 나가고 싶었지만, 지역에서 욕먹기 싫어서 웬만하면 나가곤 했다.

그 마을에는 농고를 나와서 농사를 짓는 농민회 창립 멤버 형님이 한 분 계신다. 뜨거운 낮이나 오전에 배고프거나 하면 그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한숨 자곤 했었다. 2014년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도 그 형님 댁에서 라면 끓여먹다가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면 지회 총무를 맡고 있어서 면 지회 영농발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제작이었던 ‘워낭소리’ 상영회와 함께 하는 영농발대식을 기획했었는데, 약 150여명의 농민들이 모여서 나름 성대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뒤풀이 자리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그 형님이 걸어가면서 나에게 던진 한마디 ‘덕수야, 고생 많았다. 많이 바쁘지? 여러 가지 일로…. 그러나 너는 농민임을 잊지마라!’ 마지막 한마디에 울컥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자랑스런 농민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요즈음 우리 스스로도 농민이란 단어 대신 농업인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농업인과 농민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백과사전에 따르면, 농민은 농업을 생계의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가공, 유통이 아닌 직접 생산 활동을 하는 자를 일컫는다. 즉 농업을 유일한 생계로 하고 있는 계층을 농민이라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인은 행정적 개념이다. 300평(1,000㎡)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면서 연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해야 하고, 농산물 판매액이 연간 120만원 이상인 자를 농업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모든 공식명칭은 농업인이라고 부른다. 1996년 제정된 농민의 날도 농업인의 날로 바뀌었으며, 우리가 만들어낸 농민수당도 농업인수당으로 바뀌어 버렸다.

왜일까? 농민이란 단어가 금기시 되는 이유가 뭘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을 규정해왔던 농민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농업인이란 단어로 대체하는 정부기관의 속내는 무엇일까? 땅을 일구고 땅과 함께 한평생을 살아왔던 이 땅의 농민들은 농업인이 아닌, 자랑스런 농민으로 불리고 싶을 것이다. 농민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정부기관에 자격요건을 갖추어 등록이 되는 자가 아닌, 국민의 먹거리, 민족의 먹거리를 생산하며 1만년 동안 살아왔던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는 곧 식량위기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업과 농민은 계속 천대받으며 투명인간 취급을 당할 것이지만, 식량의 생산을 담당해온, 땅을 일구고 지켜온 우리들이 바로 자랑스러운 농민임을 한순간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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