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75] 허공에 날리다

  • 입력 2023.08.13 18:00
  • 수정 2023.08.13 22: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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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이제 8월 중순이다. 지난 7월 중순 무렵엔 폭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농작물 피해를 입었다. 폭우가 좀 멈추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폭염이 지난주까지 기승을 부리더니 태풍이 또 올라와 많은 비가 내렸다. 온 나라 전체가 난리다. 특히 농촌 지역과 농작물 피해는 엄청났다.

지난 한 달여 동안의 장마와 폭우 그리고 폭염과 태풍은 나 같은 작은 과수 농부에게도 힘들었다. 큰 피해는 없었으나, 장마와 폭우 때는 병충해가 기승을 부리는데 제때 적절한 방제를 해야 한다. 비가 계속 내리면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또 폭염 때는 가만히 있어도 힘든데 예초 등 농작업을 하면 완전히 땀범벅이 돼 버린다. 자외선 차단제라도 얼굴에 바르면 땀 때문에 흘러내려 눈으로 들어가 눈이 따끔거리고 아프다. 그래서 결국 수건으로 땀과 함께 닦아 버리기 일쑤다. 여름이라 당연히 더울 수 있지만, 올해엔 더워도 너무 덥다. 이제 처서가 지났으니 좀 나아지려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현장의 농민들은 몸으로 기후위기를 느끼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엔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각종 언론에서도 세계 식량위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보도가 가끔 나오고 있다. 기후·환경·생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곡물 위기, 세계 쌀 무역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쌀 수출국 인도의 쌀 수출금지조치 등은 세계 식량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문기관의 예측과 주장을 언론이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보도는 하면서도 국내 농업·농촌·농민 문제 얘기만 나오면 언제 식량위기를 걱정했느냐는 듯 인색하기 짝이 없다. 식량위기가 예견되는 현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은 하면서도, 국내 농업과 농민과 농촌 문제와의 연계성이나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외면하고 있어 안타깝다.

예컨데 내가 본 기사 중 한국경제 7월 30일자 보도가 대표적인 한 예이다. 그 기사에 의하면 ‘정부가 비싼 값에 추가적으로 사드린 쌀 때문에 최근 6년간 4조3,900억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해 매년 평균 7,319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다’며 ‘쌀 비싸게 사놓고 허공에 날렸다’고 썼다. 얼핏 커 보일 수도 있는 액수이지만 한 해 전체 국가 예산 620여조원의 약 0.1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경제 규모에 비해 이 정도의 예산으로 주식인 쌀의 안정적 생산·소비 체계를 유지할 수 있고, 쌀 농가소득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결코 큰 액수라 할 수 없다. 날린게 아니라 농가 및 국가 경제, 그리고 식량수급 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리고 쌀이 엄청 과잉생산되는 것처럼 부풀리고 있으나 쌀 자급률은 85%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의무수입물량 40여만톤이 매년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과잉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렇듯 쌀 관련 지원액이 결코 크지 않고, 자급률도 100%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은 끊임없이 쌀 생산이 과잉인 것처럼 국민이 인식하게끔 만들고 있다. 식량 및 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밀·콩·옥수수 같은 타작물 생산과 소비를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고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데 쌀 예산이 많이 들어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일부 농업계조차도 쌀 중심 농정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식량위기 시대를 대비해 농업·농촌 부문에 더 많은 예산을 안보적 측면에서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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