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우, 이대로 할인만 계속해도 될까

  • 입력 2023.08.11 09:27
  • 수정 2023.08.11 11:4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가 세일, 한우 안심 100g 8,900원, 한우 등심 5,900원, 치마살 100g 8,900원. 최상등급 맛 보장’.

삼겹살을 팔아줬더니 카카오톡으로 판매가격을 매주 알려주는 한 정육점이 얼마 전 보내온 신규 가격정보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이후, 우리 집은 한 곳에 둥지를 튼 이래 주로 근처 단골 중형 슈퍼마켓에서만 고기를 사던 이십년 가까운 관습(?)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구매 경로를 다양화했다. 나이 든 부모님은 물론이고, 나 역시 인터넷에서 (신선도를 보장한다는 대형 쇼핑 체인이 아니더라도) 고기를 사도 신선품 소비에 무리가 없단 사실을 이 때 처음 접했다.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이 타지 정육점의 가격표는 확실히 이전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숫자들로 채워져 있고, 지금도 우리 동네 단골 슈퍼마켓보다는 꽤 가격이 저렴하다. 한우 소비 촉진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한우자조금의 최근 판매 동향을 보면, 한우 등심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30% 이상 할인해 판다는 가격이 1등급 100g당 7,000~8,000원대였다. 당시 대형마트에서는 100g에 만원 정도로만 내놔도 ‘특가’ 딱지가 붙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8,000원, 심지어 6,000원이라는 시중 가격조차 그다지 싼 느낌이 들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제 소비자들이 찾아볼 수 있는 한우 1등급 100g 등심의 최저가는 4,400원대다. 일단 이 정보를 한 번이라도 접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시중에서 200g 가격을 주고 100g을 먹는 데 강력한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의 시중가 역시 한우의 농가생산비를 생각했을 때는 매우 저렴한 편인데도 말이다.

여러 가지 걱정이 동시에 들 수밖에 없다. 거의 상시에 가까운 할인 판매는 소비자 인식을 크게 바꾸고 있다. 설령 기나긴 터널을 견디고 불황이 끝나더라도 한우 농가들이 지금껏 쌓아온 고품질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남긴다. 넓게 보면 축산물 전체의 소비에 미칠 악영향 또한 우려된다. 한우의 할인가는 이미 한돈 브랜드에서 최상급으로 판매되는 제품들의 가격영역까지 근접한 상태다. 부수적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는 축산물 소매점들은 점점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할인판매를 아무리 지속한들, 이것만으로는 농가 생계와 직결되는 도매가격을 끌어올릴 수 없음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그간 우리 축산업의 대들보였던 소규모 한우 농가의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이대로 한우 산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저등급육 대량 수매, 군·공공급식에서의 대량 공급 등 한우업계에서 제기되는 대책들의 병행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