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아들과 딸⑧ 더 늦기 전에, 누이를 위하여

  • 입력 2023.08.06 18:00
  • 수정 2023.08.06 19:1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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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3남 3녀 중 맏이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주선으로 어렵게 들어간 국민학교에서마저 어머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중퇴하고 말았던 강원도 출신의 김용심 할머니.

이 할머니가 소녀 적에 한글을 터득한 과정이 눈물겹다. 김용심의 어머니는 딸을 학교에 못 나가게 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아예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영 못 참아 했다.

-얘야, 광에 가서 쌀 한 바가지 퍼 오너라!

김용심이 어머니의 명을 받고 광으로 향하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아래 남동생이 공부하고 있는 방을 거쳐서 가야 했다. 김용심은 쌀 바가지를 내려놓고는 주머니를 뒤져 쪽지를 꺼낸다.

-얘, 용식아. 마을회관 벽에 붙어 있는 걸 베껴왔는데…이거 어떻게 읽어?

-아, 이거? 해·방·조·국, 삼·천·리·강·산…

-삼·철·리…강·산? 이 글자가 ‘철’자라고?

-아니야, 누나. 그게 원래는 ‘천’자인데 뒤에 리을로 시작하는 글자가 오면 ‘철’이라고…

그때 부엌 쪽에서 “쌀 푸러 간 년이 뭣 하고 있어!”라는 불호령이 날아들고, 김용심은 남동생에게 “누나가 글씨 물어봤다고 절대 말하면 안 돼”라는 당부를 하고서야 방을 나섰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도록 주저앉혔으면 딸아이에게 미안해서라도, 남매간에 정겹게 가르쳐주고 배우고 하도록 권하기는새로에, 남동생에게 모르는 글자를 물어보다 들키기라도 하면 날벼락이 떨어졌었다고 김용심 할머니는 회고한다.

세월이 흘렀다. 3남 3녀 중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아들 셋은 제가끔 적성을 살려 사회에 진출했다. 완고한 친정어머니 슬하에서 변변히 초등교육도 받지 못했던 딸들도…이윽고 나이가 들어 모두 출가를 했다.

그 집안의 맏이인 김용심도 공무원과 결혼하여 서울의 셋방에 보금자리를 차렸다. 결혼한 이듬해에 첫딸을 낳았고, 그 아래로 두 아들을 더 두었다. 가난한 공무원을 남편으로 둔 탓에 생활이 썩 어려웠지만, 김용심 주부는 딸아이를 유치원에 입학시킬 때, 남편의 한 달치 봉급을 몽땅 털어서 좋은 옷을 사 입혔다.

“초등학교 때 소풍 갈 때도 남자애 둘은 도시락을 대충 싸주면서 용돈 몇 푼씩 쥐여 보냈지만, 딸애한테는 전기구이 통닭을 두 마리씩 챙겨 보냈어요. 동무들하고 나눠 먹으라고. 내가 겪었던 일이 워낙 한(恨)으로 남아서…내 귀한 딸이 어디 가서 기죽는 거 싫었거든요.”

드디어 그 딸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친정집에서 다녀가라는 호출이 왔다. 그사이에 많이 늙으셨으나 친정어머니의 위세는 여전했다.

-너는 정신이 있는 거냐? 남의 집에서 사글세 사는 처지에, 더구나 밑에 남동생이 둘씩이나 되는데, 나중에 그 애들이나 대학에 보내면 됐지 기집애를 대학교육까지 시킬라고 그래?

-어머니, 우리 딸아이 대학 보내는 것 말리려고 친정에 다녀가라 하셨어요? 어림없는 말씀 마세요. 나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딸애 대학 보냅니다. 아들은 나중에 불행이 닥쳐도 노동력이 있으니까 굶어 죽진 않겠지만, 여자는 그게 안 되니까 더 많이 가르쳐야지요.

“내가 그렇게 못을 박고 나서는 데에야 어머니도 별수 있나요. 딸애 대학 보내는 건 아버지도 반대하셨어요. 내가 너무 고생을 할까봐 그러신다고….”

소를 팔아서 맏딸을 국민학교에 넣어 준 적이 있는 김용심 씨의 친정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딸들을 불러 앉힌 자리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절절한 후회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에, 김용심 씨의 친정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맺혔던 원과 한을 털어놓고 화해하는 해원(解冤)의 기회를 갖지도 못한 채, 그들 모녀는 이승과 저승으로 그렇게 나뉘고 말았다.

나이가 어지간한 이 땅의 아들들은 본의였든 아니었든, 누이들의 희생에 빚진 바가 작지 않다. 순창여성한글학교에 모인 할머니들과 앞에서 소개한 강원도의 김용심 할머니처럼 차별을 받고 살아온 나이든 여성들의 가슴 바닥에는 아직 아픈 앙금이 남아 있을 터, 우선은 그 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이 한마디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참 미안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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