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농협 “묵은 의혹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하자”

RPC 재고소실•이사회 중복수당•부동산 고가매입 등 의혹

조합원들이 문제 포착해 대의원회에 배포, 논란 본격 점화

신임 조합장, 해결 의지 드러내 … “진상 철저히 규명할 것”

  • 입력 2023.08.04 10:47
  • 수정 2023.08.04 11:2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31일 상주농협 대의원회에 앞서 상주시농민회 내서면지회 소속 상주농협 조합원들이 대의원들에게 조합의 의혹을 정리한 문서를 배포하고 있다. 상주시농민회 제공
지난달 31일 상주농협 대의원회에 앞서 상주시농민회 내서면지회 소속 상주농협 조합원들이 대의원들에게 조합의 의혹을 정리한 문서를 배포하고 있다. 상주시농민회 제공

지난달 31일 경북 상주농협 대의원회장 입구에 조합원 몇몇이 인쇄물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상주시농민회 내서면지회(회장 전성도) 소속 상주농협 조합원들이 조합 운영상의 의혹 몇 가지를 정리해 배포하며 대의원들의 관심을 촉구한 것이다. 신임 조합장이 임기를 시작한 지금, 과거의 어두운 의혹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보다 건강한 조합을 만들어가자는 의도다.

조합원들이 제기한 의혹은 세 가지다. 첫째는 미곡종합처리장(RPC) 재고물량 소실. 조합원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상주농협 RPC의 연간 감모손실액은 수백만원에서 기껏해야 1,000만원대인데 2015~2017년 3년 동안 돌연 4억5,000만원(연평균 1억5,000만원)의 손실액이 발생했다. 물량으로 치면 40kg 1만가마로, 실제 감모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양이다.

2015년은 상주농협이 RPC 실무담당자를 교체한 시기다. 조합원들은 실무자가 교체되기 전 모종의 이유로 1만가마의 쌀이 소실됐고, 후임 실무자들이 이를 은폐한 채 3년에 걸쳐 손실처리를 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개인횡령이나 관리소홀로 보기에도 너무 많은 양인 만큼, 거래처 외상미수금 사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둘째는 이사회 회의록 위조 및 수당 중복지급 문제다. 상주농협은 지난 2월 14일 오전 11시 정기이사회를 열어 7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그런데 같은날 오후 5시, 다시 임시이사회를 소집해 1개의 추가 안건을 처리했다. 모 이사가 밝힌 바에 의하면 조합 측이 이사회 상정 안건을 한 개 누락해 급히 임시이사회를 진행한 것이며, 의결은 대면회의가 아니라 개별 전화통화로 진행됐다.

문제는 조합 측이 이사회 회의록을 대면으로 회의한 것처럼 꾸며 놨다는 점이다. 이사회 회의록은 조합원들이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자료로, 사문서 위조와 조합원 기만의 소지가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날 이사들은 2회분의 회의 출무수당을 모두 지급받았다. 회당 55만원씩이니 인당 110만원이고 13인 지급총액은 1,430만원이다. 규정상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도의적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이를 용인한다면 이사회가 고의적인 ‘쪼개기’ 의결로 출무수당을 남용하더라도 통제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부동산 취득 절차위반 문제다. 상주농협은 2022년 상주 헌신동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부지 3,000여평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감정평가를 누락한 채 임의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심지어 저가거래 상황도 아니었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해당 부지의 주변 땅값 시세는 당시 평당 22만원 수준이었으나 상주농협은 그 두 배인 평당 52만원을 지불했다. 해당 부지가 주변보다 비싼 걸 감안하더라도 상식적인 가격선은 30만원대 정도다. 평당 차액이 대략 20만원이라 치면 수억원 규모의 조합 손실이 걸린 문제다.

더욱이 이 부지는 매매 이전부터 논란이 많은 곳이었다. △진입로가 불편하고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데다 △인근 공장의 분진 발생이 심각하다는 내부 감사의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절차를 누락하면서까지 땅을 고가에 매입한 정황에 조합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상주농협 본관 건물.
상주농협 본관 건물.

이 세 가지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현직 상주농협 상임이사 A씨다. 전임 조합장이 물러난 상황에서 현재로선 사건 당시의 최고 책임자일뿐더러, RPC 재고문제 당시엔 RPC장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이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RPC 재고소실은 1만가마가 아니라 3,000가마로 모두 실제 감모임 △2월 14일 두 번째 이사회는 일부 회의출석, 일부 유선의결로 진행했음 △APC 건은 상주시 정책에 발맞춰 급히 진행하다 절차를 누락했으며 평당 52만원은 설계비·허가비 등이 포함된 비용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의혹을 잠재우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조합원들이 파악한 내용과 차이가 크지만 증빙 자료를 확인할 수 없고 일부 내용에선 구체적 설명을 회피하고 있다. 설혹 A이사의 해명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RPC 관리부실, 이사회 안건누락 및 회의록 위조, 부동산 취득 절차누락 등 조합이 범한 실책은 분명히 드러나는데, 아직까지 이에 대한 책임과 후속조치가 전혀 이뤄진 바 없다.

기실 이 세 가지 의혹도 일부에 불과하다. 상주농협은 금융대출 부실감정과 지점 횡령사건 등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어왔고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성도 상주시농민회 내서면지회장은 “농협의 도덕적 해이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본다. 말도 안되는 사고를 계속 쳐왔으면서 어느 것 하나 정확히 해명되는 게 없다. 임직원들이 이런 사고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분개했다.

다행스러운 건, 새로 당선된 강동구 조합장이 의혹 청산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APC 부지 매입 당시 부당성을 지적했던 감사가 바로 강 조합장이며, 지난달 31일 대의원회에선 위 의혹들과 관련해 A이사와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강 조합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얘기가 흘러나오던 사안들이다. 철저히 진상규명을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현재 이 의혹들에 대한 경찰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내부 정화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정식 수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오다. 조합원들의 자주적 노력과 신임 조합장의 의지가 맞물린 호재 상황, 상주농협이 난잡한 과거의 의혹들을 깨끗이 털어낼 수 있을지 향배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