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자치 확대가 농촌 살리는 길

불합리한 중앙통제 폐지와 읍·면 자치권 보장 필요

  • 입력 2023.08.06 18:00
  • 수정 2023.08.06 19:09
  • 기자명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농촌·농민·농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앙정부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지방자치단체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것이 나을까? 필자는 후자가 낫다고 본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보면, 그래도 농촌·농민·농업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조례들이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자치법규정보시스템(https://www.elis.go.kr/)에서 ‘최저가격’이라고 검색하면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위해 제정된 조례가 50개 이상 나온다. 중앙정부는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에 소극적이지만, 지방자치단체는 그래도 적극적인 곳이 많다.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지는 모델

농민수당도 지역에서부터 현실화돼 왔다. 2019년 전남 해남에서 시작된 농민수당은 이제 전국의 도(道) 지역에서는 모두 도입됐다. 확산속도가 매우 빨랐다. 국가 차원에서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적인 고민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에서부터 선도적으로 제도화를 한 것이다.

학교급식도 그랬다. 무상급식이나 친환경급식을 지원하는 것으로 학교급식 조례가 먼저 바뀌면서, 상위법령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이처럼 중앙정부보다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변화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차이는 ‘거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앙정부 관료나 여의도 국회보다는, 가까운 지방자치단체에 농민들의 목소리가 전달되고 반영되기 쉬운 것이다. 즉 ‘보다 가까운 정부’가 농촌·농민·농업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농촌·농민·농업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치의 확대’이다. 중앙정부의 불합리한 통제를 없애고, 지역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수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부터 선도적으로 채택된 정책을 중앙정부가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자치의 확대’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농지제도 같은 것은 국가의 법률로 일률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의 농촌·농민·농업에 필요한 여러 정책들과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광역 시·도에서 농민수당 조례를 제정한 이후에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에서 기초 차원의 조례를 통해서 추가로 농민수당을 더 지급하려고 하면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농민수당을 더 지급하겠다는 것을 중앙정부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2020년 4월 전라남도가 농어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지속가능한 농어촌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농어민 공익수당 6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한 가운데 진도군 고군면 석현리 마을회관 앞에서 농어민 공익수당을 받은 주민들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광역 시·도에서 농민수당 조례를 제정한 이후에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에서 기초 차원의 조례를 통해서 추가로 농민수당을 더 지급하려고 하면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농민수당을 더 지급하겠다는 것을 중앙정부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2020년 4월 전라남도가 농어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지속가능한 농어촌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농어민 공익수당 6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한 가운데 진도군 고군면 석현리 마을회관 앞에서 농어민 공익수당을 받은 주민들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중앙정부의 불합리한 통제

문제는 불합리한 중앙통제이다. 예를 들면, 광역 시·도에서 농민수당 조례를 제정한 이후에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에서 기초 차원의 조례를 통해서 추가로 농민수당을 더 지급하려고 하면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농민수당을 더 지급하겠다는 것을 중앙정부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현행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농민수당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신설에 해당한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주장이다. 농민의 사회적·공익적 기여를 인정해서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신설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일에 이렇게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의문이다.

이처럼 과도한 중앙집권이 지역에서부터 일어나는 긍정적인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농촌·농민·농업에 필요한 정책들을 불합리하게 통제하고 있는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깨는 것이다.

물론 현실을 보면, 지방분권 논의가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제주에 이어 강원, 전북 등으로 특별자치도가 확산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자치권의 확대’보다는 ‘규제완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진정으로 자치권이 확대된다면, 그 자치권을 활용해서 규제를 완화할 수도 있고 강화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자치’라고 하면서 ‘규제완화’에만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규제완화’에만 초점을 둔 특별자치도는 ‘자치권의 확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확산’일 뿐이다.

자치권 확대의 핵심은 읍·면 자치 회복

한편 농촌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자치권 확대는 읍·면의 자치권 회복이다. 1949년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자치법에서는 도시지역은 시(市)를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고, 농촌지역은 읍·면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고 있었다. 이런 체제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 유지됐다. 그래서 1960년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선 읍장, 면장, 읍의원, 면의원을 주민직선으로 뽑았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 직후에 읍·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군(郡)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한 것이다. 그 후 62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읍·면 자치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읍·면 자치는 우리 지방자치의 역사이다. 그리고 세계 많은 나라들은 농촌지역에서는 읍·면 정도를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우리의 읍·면에 해당하는 정·촌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고 있다. 독일, 스위스 등 유럽대륙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읍·면 자치의 회복이 절실한 이유는 농촌을 지키고 농촌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현실을 보면, 농촌지역 중에서도 면 지역의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더욱 심한 상황이다. 대도시로부터 떨어진 면 지역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군청에서 나오는 정책을 보면, 산업단지나 공장을 유치한다든지 관광지를 개발한다든지 하는 것이 많다. 아니면 상당 부분 계획을 위한 계획에 그치는 탁상정책, 탁상행정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정책으로 면 지역의 인구감소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 숱하게 경험한 것이다.

오히려 실질적인 움직임은 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면 지역의 열악한 생활인프라를 개선하고, 악취 등이 발생하는 시설을 정비하고, 작은 학교를 살리고, 귀촌·귀농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주택, 일자리 등 도움을 주려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이런 활동이 벌어지는 곳은 읍·면 단위인데, 정작 읍·면에는 권한도 예산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읍·면은 군청의 하부행정조직이다. 순환보직으로 임명되는 읍·면장과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읍·면장은 임명권자인 기초지방자치단체장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이지, 지역주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가 아니다. 이런 식의 체제로는 농촌의 생활인프라를 개선하고, 각 읍·면의 특성에 맞는 정책들을 책임있게 펴기 어렵다. 그래서 읍·면이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면 지역의 인구가 줄어든 것이 고민이다. 그러나 스위스 같은 나라는 인구가 1,000명이 안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코뮌)도 수두룩하다. 중요한 것은 자치를 하려는 의지이다.

주민자치회 강화부터 시작할 수도

읍·면의 자치권 회복이 한꺼번에 이뤄지기 어렵다면, 일단 지금 일부 지역에서 시범실시하고 있는 주민자치회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부터 할 수 있다. 가령 주민자치회가 주관해서 이뤄지는 주민총회에서 결정되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예산과 행정력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가 주도해서 농촌공간을 보전하고 생활인프라를 개선하는 자치계획을 수립하면,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행정의 책무로 삼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지방의회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군 중심의 행정편의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아니라 읍·면 중심, 주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농촌을 지키고 농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의 주인인 주민들이 해야 할 몫도 있다. 더이상 군청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주민들 스스로 읍·면 자치의 확대를 요구하고 실천해나가야 한다. 현행 주민자치회에도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지역에 맞게 수정·보완해서 활용하는 것이 낫다. 주민자치위원회로 남아 있는 지역의 경우에는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 나간다’는 의미의 자치는 이론보다는 현장의 실천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 정답은 없지만,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