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찌질한 이야기들

  • 입력 2023.08.06 18:00
  • 수정 2023.08.06 19:09
  • 기자명 조경희(전북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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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전북 김제)
조경희(전북 김제)

이야기 하나. 핸드폰으로 입금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역 : 종자반환금, 금액 : 80,000원’.

이건 뭐지? 한참의 두뇌회전 끝에 내역을 생각해 내었다. 올 초 전라북도에서 벼농사를 위해 구입한 보급종 종자값에 20kg 1포당 1만원씩을 지원하겠다더니 이제야 입금이 된 것이다. 지난 해 정부의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은 벼 40㎏ 기준 6만4,530원(포대벼 1등급)인데 반해 올해 공급되는 보급종 가격은 같은 40kg 기준 8만9,760원으로 그 차이를 생각하면 그저 생색내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은 보급종 종자 중에서 ‘신동진 벼’는 그나마의 지원금도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올해 정부는 오로지 생산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가 모두 선호하는 품종이자 전라북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이 품종을 퇴출(공공비축미 수매 제외, 보급종 생산 중단)시키려 했다. 당장 농민들이 반발하고, 정치권과 행정, 농협 등도 나서서 반대하고, 여러 언론에서도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니 결국 정부가 한발 물러서 퇴출을 3년간 유예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전라북도가 보급종 종자반환금에서 신동진만 제외시킨 걸 보니 중앙정부의 눈치가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이다. 달리 할 말은 없고 그저 찌질해 보일 뿐이다.

이야기 둘. 올 여름 긴 장마와 집중호우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가운데 농작물의 피해 역시 상상하기 힘들만큼 컸다. 논농사가 중심인 우리 지역은 정부의 전략작물직불금 정책에 따라 논콩 재배가 많이 확대됐는데 이 논콩이 집중호우의 피해를 입었다. 물에 잠긴 논에서는 발아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올라왔던 콩도 습해를 입어 성장이 멈추거나 뿌리부터 썩어버린 논이 대부분이다. 김제시 죽산면의 경우 수해로 인한 논콩의 피해만으로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될 정도였으니 논콩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과 권장에 따라 논콩을 재배했던 농민들은 한 해 농사를 시작하자마자 망쳐버렸으니 타들어가는 속이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아무런 대책 없이 뒷짐을 지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권장했지만 모든 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원인이니 책임은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책임농정을 운운하는 정부 또한 찌질해 보일 뿐이다.

이야기 셋. 해마다 장마철이 끝나면 밥상 물가가 올랐다는 뉴스가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주로 채소가격의 상승을 예로 무슨 큰 난리나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는 식이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이라 쌀값 동향은 어떤지 궁금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쌀 관측정보, 최근의 물가동향, 쌀값과 관련된 언론보도 등을 찾아보았다.

종합해보면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벼의 거래가격이 상승하고 있고, 이에 따라 쌀값도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크다. 지난해 정부의 공공비축미 수매량이 많았고, 농협을 제외하면 산지 유통업체들의 매입량도 적었으니 당연한 듯 보인다. 쌀값이 오르면 좋은 일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안타깝게도 농경연의 관측정보처럼 벼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시장출하 목적의 재고량은 거의 하나도 없다. 지금 쌀값이 올라도 농민들에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시장의 쌀값 상승을 이유로 적정가격을 유지하겠다며 정부가 보유한 벼를 시장에 방출(공매)하면 수확기 벼 매입가격과 쌀값이 떨어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겪었던 사상 유례 없는 쌀값하락도 2021년 수확기를 앞두고 정부가 쌀값 안정을 이유로 시장에 벼를 방출한 것이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정부양곡 시장 공매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쌀값이 하락할 때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 정부가 쌀값이 오를 때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던 전례를 생각하면 국가의 양곡정책 역시 찌질하다 못해 참담할 뿐이다.

사실 위 세 가지 이야기는 소재는 다르나 모두 벼농사와 쌀에 관한 것이다. 생산량이 많다는 이유로 아무 죄 없는 품종을 퇴출시키고, 생산량을 줄인다고 논에 타 작물 재배를 권장하더니 막상 피해가 생기니 나 몰라라 하고, 쌀값이 오를 듯 하니 시장 공매를 저울질하고 있는 찌질한 정부의 이야기이다. 한편 보급종 4포대 종자반환금 4만원을 못 받아서 화나고, 전략작물직불금을 기대하고 1만4,000평 논에 콩을 심고 홍수피해로 전전긍긍하며, 논농사는 이제 겨우 이삭거름 줄 때인데 벌써 쌀값 걱정부터 하고 있는 찌질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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