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단체 지도부, 후쿠시마 핵오염수 놓고 어민 목소리 외면?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 일본 핵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 돌연 취소

어민들 생존 급박한데, 여당 비례대표 공천 후문 등 회유‧압박설만 난무

  • 입력 2023.08.02 09:18
  • 수정 2023.08.04 09:4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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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국내 3만여 어민을 대표하는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회장 김성호, 한수연)가 최근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반대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한 차례 연기한 뒤 돌연 취소하면서, 회원들의 원성을 사는 것은 물론 그 배경을 놓고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한수연은 지난달 25일 서울에서 일본 핵오염수 방류 반대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으나 중앙이사회가 집회 날짜를 8월 4일로 미루더니 급기야 취소했다. 한수연은 그간 성명서 등을 통해 반대 입장을 공식 천명해 온 데다, 방류 시점이 코앞으로 예고된 시점이라 지역 회원들은 이번 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최근 여당(국민의힘)이 김성호 회장에 비례대표 공천을 제의했다는 후문이 돌면서, 일선에선 한수연 중앙 지도부가 일본 핵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괴담이라고까지 규정하면서 일본을 두둔하는 정부‧여당의 회유와 압박에 포섭돼 집회를 취소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앙뿐 아니라 도 단위 지도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수산업경영인 전라남도연합회(회장 박연환)는 지난달 27일 중앙이사회의 결정과 관계없이 예정대로 상경 집회를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당시 이 결정은 박연환 회장의 부재로 인해 상임 체제로 열린 회의에서 결정됐는데, 3일 만에 번복됐다. 복귀한 박 회장이 주관한 긴급 이사회가 전남도 단독 개최 결정을 최종 취소한 것이다. 박연환 회장은 취소 이유를 “태풍 카눈으로 일기 상태가 안 좋을 거 같아서”라며 “태풍이 오면 배, 그물 등 시설물 관리를 위해 비울 수가 없다. 집회 개최 여부는 앞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회원들 분위기는 싸늘하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특히 한국수산업경영인 완도군연합회(회장 차민진)는 지난 6월 전남 완도군 소모도 인근 해상에서 어업인 500여명과 배 200여척을 동원해 일본 핵오염수 방류 결사반대 해상 퍼레이드를 주도한 바 있고, 이번에 전남도 단독 개최 결정을 알리는 보도자료까지 냈다가 집회가 또 불발되자 ‘지도부의 행태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원성이 들린다고 전했다. 차민진 회장은 현장 반응이 “매우 안 좋다”고 표현했다. 현장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집행부의 일방적 결정과 통보로 읍‧면 단위로 현재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지난 6월 23일 어민들이 완도군 소모도 인근 해상에서 진행한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결사반대 해상 퍼레이드'에서 참여한 선박들이 줄지어 서 있다. 조원선 한국수산업경영인 보길면협의회 회장 제공 
지난 6월 23일 어민들이 완도군 소모도 인근 해상에서 진행한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결사반대 해상 퍼레이드'에서 참여한 선박들이 줄지어 서 있다. 조원선 한국수산업경영인 보길면협의회 회장 제공 

조원선 한국수산업경영인 보길면협의회 회장은 “지도부가 어민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며 압박하는 사람들의 눈치만 본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프다”면서 “모든 것은 정부와 해양수산부, 국민의힘과 연관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한수연 전국 지도부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수산업경영인 완도군연합회도 단독 집회 결정 당시 낸 보도자료에서, “어업인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이사들의 개인 생각으로만 무기한 연기라고 결정하고 통보했다”면서 “(이는) 지난해 12월 양곡관리법 개정에 찬성했던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회장 이학구, 한농연) 중앙집행부가 시‧군 대표단도 모르게 양곡관리법 개정 반대를 결정한 것과 동일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단독 집회를 예고하면서 “김성호 회장의 무능함과 개인주의적 성향을 규탄하고 퇴진을 촉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에 찬성해 왔던 한농연이 민주적 의견 수렴 없이 집행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개정 반대라는 정부 입장에 돌연 편승하면서 두 달여간(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내부 갈등이 불거졌던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정부에 의한 농‧어민 갈라치기의 전형적 모습”이란 비판이다.

조원선 회장에 따르면 지역에선 이번 사태로 김성호 회장 불신임과 해임까지 거론되는 상태다. 김성호 회장을 비롯한 중앙 지도부가 민주주의적 합의 과정을 무시하고, 현장 어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완도군이 해상시위를 먼저 시작했는데 그때도 어민들의 말을 듣고 움직인 것이다. 이번에도 어민들 80% 이상이 ‘너희(한수연) 뭐 하느냐?’라고 해서 반대 집회를 하자고 건의했던 거다. 핵오염수 방류 예고로 해산물 가격이 급락해 어민들이 너무 힘드니 정부가 대책을 세우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게 어민들의 요구다. 그러나 중앙은 시‧군과 도 지도부를 선동해 현장의 생각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졸속으로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 회장은 “마치 그들만의 단체인 것 같다. 지도부는 행정, 기관, 단체, 회원들 각자가 낸 여러 목소리를 조율할 책임이 있음에도 회원들을 배제했다”라며 “이는 어민들을 무시한 처사로 묵과할 수 없다. 전체 지도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분개했다.

한편 <한국농정>은 한수연에 △예정된 집회를 취소한 사유 △집회 취소 결정이 그간의 입장을 바꾸는 뜻인지 여부 △이번 결정이 지역 회원들의 목소리에 반하며 민주주의적 합의 방식을 역행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 △김성호 회장의 국민의힘 비례대표 공천 제의 후문을 둘러싼 회유설에 대한 사실관계 및 입장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으나, 보도 시점까지 답변받지 못했다.

1989년 창립총회를 거쳐 발족한 한수연은 2000년대 농어가부채특별법 제정 운동, WTO‧FTA 반대 및 대책 마련, 오염 물질 해양투기 방지 등 국내 수산업 보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을 펼쳐 왔다. 전국 12개 도 연합회와 70개 시‧군연합회가 활동하며, 2022년 기준 회원 수는 3만1,232명이다. 업종별로는 어선어업(16,209명, 51.9%), 양식어업(13,992명, 44.8%), 수산 가공(1,031명, 3.3%)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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