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국민에게 ‘거부권’ 행사하는 대통령

  • 입력 2023.07.23 18:00
  • 수정 2023.07.23 21: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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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주객전도. 지금 윤석열정부의 행태를 요약할 단어들이 많겠지만, 본인은 이 단어를 꼽으련다. 정부의 주인인 국민은 무시하고, 우리 국익에 맞지 않는 ‘남’의 선택은 존중하는 상황. 이걸 주객전도라 표현하지 않으면 뭐라 할까.

국민을 무시한 사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난 4월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더는 쌀값 폭락이 반복돼선 안 되며, 쌀값 폭락으로 인한 쌀 농가의 파탄이 국내 농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며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던 농민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던 대통령.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고민도 없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등 ‘농관련 부처’들은 대통령의 뜻을 그대로 따른다. 농식품부 장관은 쌀 저장할 돈으로 스마트팜이나 짓자고 한다. 영어단어는 어쩜 그리도 좋아하는지, 영어로 된 정책들(스마트팜·푸드테크·그린바이오 등)만 주구장창 내놓는다. 그 영어 정책이 농민을 위한 정책이면 모를까, 하나같이 ‘기업을 위한 정책’이자 ‘농민 없는 농업정책’이라는 건 더 큰 문제다.

‘남의 나라’의 선택은 존중하는 사례? 역시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계획을 ‘존중’한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핵 오염수 방류가 중장기적으로 바다에, 시민 먹거리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시민은 ‘괴담 유포자’ 취급하는 대통령이, 일본의 선택은 열심히 ‘존중’한다.

‘농관련 부처’들은 대통령의 뜻을 그대로 따른다. 옛날 농식품부 장관이었던 농특위원장은 대통령이 ‘존중’한다는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대통령부터 자국민이 아닌 남의 나라 정부의 관점을 존중하는 상황에서, 농업분야 고위급 관료가 과연 자국민의 관점을 존중할 수 있을까? 기대를 접자.

대통령이 자국민에겐 거부권을 행사하고 강대국의 선택만 존중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대통령을 존중할 필요는 없다. 점차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는 농민이 늘어나는 건 그래서일까. 대통령은 존중받고 싶으면 남의 나라를 존중하지 말고 자국민을 존중해야 한다는 고언, 안 보겠지만 그래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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