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양파와 함께 한 1년

  • 입력 2023.07.23 18:00
  • 수정 2023.07.23 21:04
  • 기자명 원혜덕(경기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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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덕(경기 포천)
원혜덕(경기 포천)

 

양파를 우리 농장 회원들에게 발송하는 일이 끝났다. 양파를 수확하여 발송하는 일은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서면서 하는 큰 일 중의 하나다.

작년 8월 말 포트에 씨를 넣는 것으로 양파 기르기는 시작되었다. 싹이 난 양파를 한 달 보름 간 길러 가을에 밭에 내다 심었다. 얼어 죽지 말라고 왕겨로 덮어준 어린 양파는 추운 겨울을 잘 나고 봄이 되자 파랗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가능한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름을 나는 채소는 제초가 감당이 안 되어 비닐 멀칭을 한다. 우리가 비닐 멀칭을 하는 작물은 고추와 토마토 두 가지다. 여름 장마 전에 수확을 하는 양파는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다. 봄이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풀이 양파보다 더 먼저 올라오고 잘 자라서 김을 세 차례나 매주었다. 밑이 드는 시기에 비가 오지 않아서 물도 몇 차례 대 주었다.

양파는 다 자라면 잎이 파란 채로 눕는다. 누운 채로 두었다가 보름 정도 양분이 잎에서 뿌리로 다 내려가 잎이 누렇게 마르면 캔다. 작년에는 양파 잎이 파란 채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 누렇게 변하면서 쓰러졌다. 뽑아보니 뿌리가 맥없이 뽑혔다. 양파 뿌리에 고자리파리 애벌래가 잔뜩 붙어 있어서 양파가 뿌리부터 썩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고자리파리 피해가 심했는데 작년에는 봄 가뭄이 길어서인지 피해가 유난히 심했다. 대부분의 농가는 양파를 심기 전에 토양살충제를 뿌리는데 우리는 유기농업을 하고 있어서 화학 방제를 하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작년에는 수확을 앞두고 양파가 고자리파리 피해로 1/3이나 밭에서 썩었다.

회원들에게 양파의 양을 약속보다 줄여서 보낼 수밖에 없었기에 올해는 해결 방법으로 양파 재배 면적을 늘리기로 했다. 그러다 유기농업에 사용하는 토양살충제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지난 가을 양파를 심기 전에 밭에 뿌렸다. 작년보다는 고자리파리 피해가 한결 덜했다. 올해는 날이 좋아서 양파도 잘 자라주었다. 몇 년 만에 기쁜 마음으로 양파를 수확했다. 양파에 묻은 흙이 말라야 하니까 뽑아서 그대로 밭에 늘어놓았다. 이틀간 말리고 안으로 거둬들일 예정이었다.

수확한 때가 지난 6월 중순이었다. 수확한 다음날 기온이 33도로 올라갔고, 그 다음날은 34도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6월 중순밖에 안 되었으니 그 정도 더위에 양파가 잘못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양파가 당연히 견뎌 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도 마음이 쓰여서 저녁 무렵 밭에 나가서 양파를 집어 들었더니 햇볕을 받은 부분이 삶은 것처럼 물렁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괜찮은 것도 많이 보여 일부만 그렇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했다. 다음날 양파를 거둬들였다. 상자에 주워 담으면서 보니 생각보다 많이 망가졌다. 그래도 올해는 더 많이 심기도 했고 작황도 좋으니까 회원들에게 약속한 만큼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양파 줄기가 다 말라서 줄기를 잘라내면서 양파를 구분하였다. 많이 덴 것은 골라내고 괜찮은 것들과 조금만 덴 것을 상자에 담았다. 작업을 마치고 보니 쓸 만한 양파가 전체에서 겨우 반이 나왔다. 염려는 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회원들에게 처음에 약속한 양이 도저히 안 나오겠기에 올해도 줄여서 보내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배송 일을 마치고 나니 앞으로 이 양파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양파는 단단하고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토마토주스 다음으로 회원들이 좋아하는 품목이다. 또한 한여름에 씨를 넣고 가을에 밭에 옮겨 심어 기른 양파가 겨울을 나고 봄 햇살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 사랑스럽다. 마음고생을 잔뜩 시키는 양파지만 심는 것을 그만 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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