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아들과 딸⑥ 학교에 가고 싶었다

  • 입력 2023.07.16 18:00
  • 수정 2023.07.16 18:3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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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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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돌이킬 때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어렵게 지냈다”고 하는 것과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우리는 딸이어서 훨씬 더 어렵게 지냈다”고 회상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가난이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입성, 즉 몸에 의복을 걸치는 일이라고 딸과 아들이 같은 대접을 받았을 리가 없었다.

3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났던 강원도 출신 김용심(가명)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자.

“세 아들한테는 정성껏 길쌈을 한 고운 무명으로 옷을 지어 입혀요. 그런데 딸 삼 형제는 뻘건 목화로 짠 옷감으로…뻘건 목화라니까 좋게 들릴지 모르는데 그게 아녜요. 목화를 다 따내고 방치하면 늦가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피는데, 그 `끝물 목화'는 서리를 맞아서 색이 뻘겋게 변하거든요. 그런 하품(下品)으로 짠 옷감은 분홍색 물을 들여도 곱게 안 들고 푸르뎅뎅해요. 우리 딸들한테는 한겨울에도 그 허드레 옷감으로 지은 홑적삼을 만들어 입히고, 아들들은 장에 가서 목까지 올라오는, 우리가 ‘도코리’라고 부르는 털 쉐타를 받쳐 입게 하고….”

그랬다.

그리고 1945년의 어느 봄날, 외출했던 아버지가 돌아오더니 달뜬 목소리로 용심이를 불렀다.

-용심아, 이번 3월부터 너도 국민학교에 가게 됐다!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던 용심이가 좋아서 팔짝 뛰었다.

-그동안은…학교 갈 나이가 넘어버렸다고 안 받아준다고 그러셨잖아요.

-애비가 학교에 찾아가서 교장 선생님한테 사정사정해서 받아주기로 했는데,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해야 공부를 할 수 있다니까, 어머니 아버지 이름하고 집 주소하고 안 보고 쓸 수 있도록 미리 연습을 해두어라.

“내가 1936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열 살이 된 해였어요. 어머니가 제때 입학을 안 시켜줬기 때문에 시기를 놓쳐버렸던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소 한 마리를 팔아서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선생님들 술대접하고 학교에 기부금도 조금 내고 해서…말하자면 뒷구멍으로 ‘빽을 써서’ 입학할 수 있게 해준 거예요. 떨어질까 봐 벌벌 떨었는데, 아버지가 사전에 가르쳐준 대로 숫자도 1부터 10까지 써 보이고, 부모님 이름도 쓰고 그랬더니 합격했다고 다니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신이 나서 다녔지요.”

그런데 김용심의 학교생활은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해 8월에 해방이 되자마자 어머니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한 것이다. 아직 정부 수립 이전이라 의무교육이 시행되지는 않았으나, 그때도 부모가 자녀를 마음대로 퇴학시킬 수는 없게 돼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등쌀에 못 이겨서 할아버지가 교장을 만나 이번에도 ‘빽을 써서’ 퇴학 처분을 받아낼 수 있었다. 여전히 가정마다 가부장 문화가 완강하게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나, 그 집만은 ‘실세(實勢) 며느리’의 고집을 남편도 시아버지도 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취재에 나서서 김용심 할머니의 얘기를 들었던 2002년 5월에는 김 할머니의 어머니가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있었는데, 요즘은 관계가 어떠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대답한다.“딸 삼 형제가 모두 학교에 못 갔으니 두 여동생도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이젠 지난 일이니까 그런 내색을 안 하지요. 그러나 난 안 그래요. 그때 학교 그만두게 한 데 대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 참을 수가 없어요. 어떨 땐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딸년들은 다 무식쟁이 만들어 놓고 아들들 공부시키느라 기를 쓰시더니, 요즘 어때요? 아들네 덕분에 호강 좀 누리고 지내시우?’ 그렇게 빈정거리면 아무 소리도 못 해요. 도대체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어도 입도 뻥긋 못 하셔요. 형편이 어려워서 자식들을 모두 못 가르쳤다면 그건 이해를 해요. 그런데 우리 집은 아주 부자는 아녔어도 형편이 괜찮아서 먹고 살만은 했거든요. 더구나 맏딸인 나는 학교에 못 가게 하는 와중에도, 바로 아래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서당 훈장을 독선생(獨先生)으로 집에 들여서까지 한문을 가르쳤다니까요. 아이고, 그 얘기는 좀 쉬었다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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