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아들과 딸⑤ ‘먹는 차별’이 제일 서러웠다

  • 입력 2023.07.09 18:00
  • 수정 2023.07.09 18:1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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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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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하지만 집안이 먹고살 걱정을 크게 안 해도 될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음에도, 아들들은 모두 중등교육 이상을 받았으나 자신은 싸움싸움 해서 국민학교만 겨우 나왔다는 경북 의성 출신의 박영순 씨(1947년생). 그렇다면 이 경상도 여성은, 스스로가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낳은 자식들은 철저히 차별 없이 키웠을까?

대답이 시원찮다. 주저하다 내놓은 변명이 “나는 그래도 조금밖에 차별하지 않았다”이다.

“차별 안 하고 키운다고 키웠어요.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해요. 집안에서 아이들이 싸우면, 아들보다 딸을 먼저 혼내게 되더라니까요. 먹는 것도 은연중에 아들 먼저 챙기게 되고…. 어머니한테 당하면서 나도 모르게 물려받았나 봐요. 지금 생각하면 죄감이 들어요. 딸에 대해서.”

이 여성이 말년에 느끼고 있는 ‘죄감(罪感)’은 그런 사소한 차별에 대한 자책만은 아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교육 기회에 대한 차별을 그 역시 답습한 것이다. 자식이라곤 연년생인 아들과 딸 단둘이었다. 아들보다는 누나인 딸이 훨씬 총명하고 학교 성적도 좋았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무척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도 성적이 뒤떨어진 아들을 대학에 보낼 욕심에, 딸의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했다. 결국 아들이 성적이 모자라서 연달아 입시에 실패하는 바람에, ‘대학생 자식’을 가져보겠다는 희망이 사라졌다고 토로한다. 자신이 받았던 차별을 그처럼 억울해했으면서도 왜 또다시 딸을 부당하게 차별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래도 아들이 집안의 대들보고, 딸은 시집간 집에서 살림을 맡아서 해야 하니까….”

대대로 이어져 온 남아선호 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제 강원도 출신 한 할머니의 얘기를 해볼 차례다. 이 할머니는 6남매 중의 장녀였고, 바로 아래 동생이 아들, 그 밑으로 딸이 둘, 그 밑으로 아들이 둘이었다.

이 할머니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음식 차별이 가장 서러웠다고 회고한다.

“바로 밑 남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겸상을 할 뿐만 아니라, 밥도 맨 위쪽에 안친 쌀밥을 떠서 주어요. 우리네 딸들은 그냥 함지에다 거친 잡곡밥을 한꺼번에 담아서, 그것도 바닥에서 먹어야 하고. 하다 못 해 부침개를 해도 하얀 메밀 부침개는 남자들(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들) 몫이고 우리는 잡곡 지게미에 김치 썰어 넣고 대충 부쳐서 먹어야 하고….”

만일에 요즘 세상에 아들과 딸을 그처럼 구분 지어서 차별 대접을 한다면, 그따위 ‘원시적인 차별’을 참고 견딜 딸아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딸에 비해서 차별적으로 우대를 받았던 아들들 역시, 은연중에 그런 대접을 당연시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사탕을 사 와서 봉지째 내놓으며 나눠 먹으라 한다.

-아버지가 나눠 먹으라고 했으니까, 형이라고 더 가지면 안 돼. 똑같이 나눠야 돼.

-알았어. 똑같이 셋으로 나누면 될 거 아냐. 어디 세 봐. 하나, 둘, 셋, 넷….

그때 보다 못한 맏딸이 끼어들어서 바로 아래 동생을 추궁한다.

-아버지가 사탕 주시면서 나눠 먹으라고 했지?

-그래 누나. 그래서 지금 동생들하고 셋이 똑같이 나눴잖아.

-그게 똑같이 나눈 거라고? 그럼 누나 몫하고 니 여동생들 몫은 어디다 나눠 놨는데?

-음…나는 그냥…우리만 나눠 먹으면 되는 줄 알고….“여태 그런 대접을 받고 지내왔으니까, 아들 삼형제가 즈이들 끼리만 나눠 먹으면 공평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늙은이가 이런 얘기 하니까 작가 선생도 좀 우습지요? 세상에 사탕 그게 뭐라고, 수십 년이 지나서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그때 방바닥에 사탕을 쏟아놓고서, 사내 녀석들끼리만 개수를 세어가며 나누고 있던 장면이 안 잊히고 어른거리겠어요. 한쪽 구석에서 입맛을 다시며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던 두 여동생의 모습도…. ‘먹는 차별’이라는 것이요, 그렇게 서럽고도 무서운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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