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공공급식과 ‘효율성’이라는 명분

  • 입력 2023.07.09 18:00
  • 수정 2023.07.09 18:12
  • 기자명 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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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찰리 채플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모던타임스’는 공장 조립라인에서 노동자 역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게 된 현대사회의 노동소외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로 유명하다. 이 영화는 생산공정을 최대한 단순하게 쪼개고, 필요한 동작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해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주의 원리이자 ‘효율성’의 비참한 단면을 풍자하고 있다.

또 경제학자 제러미 러프킨은 효율성이 현대성으로 호환되고 성과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 돼버린 세태에 대해 “결함을 갖고 있는 효율성이 ‘신성’이자 ‘복음’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질타한다.

‘효율성’은 최근 서울시 공공급식을 비롯해 경기도 교육감, 경기도 영양교사회 ‘임원 명의’로 발표한 ‘학교급식 식재료 공급 관련 경쟁체제 구축 촉구 성명서’ 등을 통해 등장하고 있어서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학교급식, 공공급식 영역에서 가격경쟁으로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저비용구조의 효율성은 이미 경험했듯이 필연적으로 급식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서 친환경, non-GMO, 지역의 신선채소와 제철과일 대신 값싼 가공품, 수입농산물, 냉동식품 등을 공급해 얻어지는 이윤은 유통업체와 기업의 몫으로 돌아가며 생산자 농민의 수취가격을 하락시킨다.

둘째,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서 ‘효율성’이라는 독소는 계약재배를 통한 안정적 공급보다 관행적인 시장유통에 의존하게 만들고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계약재배는 먹거리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익명성을 벗어나서 지역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의 직접적이고 상호적인 신뢰와 소통으로 관계시장을 창출한다. 학교급식, 공공급식 계약재배 생산자들은 공동으로 작부체계를 짜고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농민으로서 존중받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소비자 역시 누가, 어떻게 농사지었는지 알 수 있는 농산물을 매개로 먹거리를 통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농촌과 도시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게 된다. 관계시장의 확대는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을 위한 대안이자 세계농식품체계에 대항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를 위해서 중요하다.

셋째, 서울시 사례뿐만 아니라 친환경학교급식 체계 개선을 위한 수원시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드러나듯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지자체의 움직임은 시민사회, 먹거리 진영 등과 만들어 왔던 거버넌스를 무용지물로 전락시킨다. 물류와 유통 중심의 효율성 추구는 연대에 기반한 협치의 민주적인 성격을 거추장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형식적 거버넌스 체계조차 무너뜨렸다. 서울시는 먹거리 거버넌스를 재정비하고 도농상생 공공급식 개선을 위한 민관협치를 강화해야 한다. 수원시 역시 행정발의로 조례에서 지난 2021년 삭제한 학교급식 운영위원회를 재설치해 민관협치를 복원하고, 그동안 운영위원회에서 배제시켜왔던 농민생산자의 참여를 보장해서 농업 현장의 목소리도 급식정책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급식에서 효율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시도는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취약하게 만든다. 공공성을 희생시키고 얻어지는 ‘효율성’이라는 덫은 공공성을 통해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려는 본래의 취지도 무색하게 만든다. 수원시는 어느 순간부터 센터 명패에서 사라진 ‘친환경’을 복원시키고, 친환경학교급식의 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공공성 강화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학교급식을 포함한 공공급식에서 이익과 경쟁을 통한 효율성의 추구는 너그럽게 감싸 안을 수 있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공공성과 양립할 수도 없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물론이고 경기도교육청 역시 저비용체계 구축에 집착하는 ‘효율성’을 내려놓고 먹거리 거버넌스를 회복하여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데 주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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