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아들과 딸④ ‘아드님’이 있었고 ‘딸내미’가 있었다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2 21:0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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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안평리. 속칭 도리원이라고 불리는 그 면 소재지 마을에 ‘이른아침’이라는 간판을 내건 한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식당 주인은 금년(2002년) 쉰다섯 살의 박영순 씨다. 아들에 비해 차별받고 자라온 사연이라면 할 말이 참 많은 사람이라 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는 내 편이어야 하잖아요. 당신도 차별받고 살아왔으니까. 그 반대예요. 조선시대 사람도 아닌데 ‘여자는 땅이고 남자는 하늘’ 뭐 이러는 거예요. 남자 형제들은 다 상급학교 진학을 했는데, 나는 엄마하고 싸움싸움 해서 겨우 국민학교만 졸업했어요.”

그래도 이 사람은 국민학교는 졸업을 했으니 순창의 한글학교 학생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던 편이다. 하지만 아들 형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았다는 데서 오는 피해의식은 그들에 못지않다. 흥미로운 것은 앞장서서 딸을 차별대우한 장본인이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 쪽이었다는 사실이다. 여성에 의한 여성차별이 대를 이어서 행해진 셈이다.

-어무이요, 내도 생선 구운 거 묵고 싶은데….

-이놈의 기집애가 어데서 생선타령을 하노.

-오빠하고 막내는 주면서….

-오빠하고 너그 남동생은 이 집안의 기둥이라 안 했나. 너는 바가지에다 후딱 밥 비며묵고 부엌에 가서 물이나 떠오라카이!

딸자식에 대한 차별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밥상머리였다. 가령 막내아들의 경우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당당하게 마주 앉아 겸상을 하지만, 시집갈 날짜를 받아놓은 맏딸도 감히 상위에다가 밥그릇을 올려놓지 못했다. 방바닥에다 양푼이나 바가지를 놓고서 허드레 반찬 한두 가지를 넣고는 대충 비벼 먹어야 했다.

먹는 걸 가지고 뭘 그리 따지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의 첫 번째 욕구가 식욕인 바에, 어린 시절부터 밥상머리에서 당했던 이러한 차별은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 당해본 여성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새벽녘, 박영순이 변소에 가려고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 어머니는 벌써 일어나서 장독 위에다 정화수를 떠놓고는 열심히 두 손을 비비고 있다.

-어무이요, 새벽부터 장독간에서 뭐하시는 깁니꺼?

-쉿, 조용히 몬하겄나. 부정탄다카이. ‘천지신명이여, 객지에 나가 있는 우리 아들, 우짜든동 출세해서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해주이소. 비나이다 비나이다.’

-맨날 그렇게 빌어봤자 용돈 떨어졌다꼬 돈 보내라는 전보밖에 더 오드느나, 쳇!

-이런 망할 놈의 지집애!

상아탑을 우골탑(牛骨塔)이라 했거니와, 아들이 객지에 나가 유학을 하는 경우 부모는 물론이고 집안의 모든 딸들도 그의 후방 지원군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회지 출신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면, 남의 눈에는 꽃이 되고 잎이 되었을지 모르나,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의 기대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총각 때야 뭐 부모님 은혜가 백골난망이네 어쩌네 하지만, 도회지 여자 만나 살림 차리고부터는 자기 처자식이 먼저지, 부모는 그 순서가 맨 꼬래비예요. 오히려 잔정 많은 딸들이 친정 드나들며 효도를 하지요. 그쯤 되면 우리도 할 말을 해요. ‘아이고, 남의 눈에 꽃이 되게 해달라고 정화수 떠놓고 빌고 계란이며 통닭 삶아서 오빠만 줄 때 우리는 손가락을 빨고 있었는데….’ 설움이 복받쳐서 막 그렇게 쏘아대면 엄마도 미안하다, 그때 내가 잘 못 했다, 그러시더라고요.”

자식에 대한 사랑이야 무슨 보상을 조건으로 베푼 건 아니지만, 온갖 희생을 다 바쳐서 뒷바라지했던 아들이, 어느 때부턴가 시골에 있는 가족을 거추장스러운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눈치가 보이면 부모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때쯤이면, 아들에 비해서 천대와 구박밖에 준 게 없는 딸들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을 저민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난 절대로 엄마처럼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나도 은연중에 딸보다 아들을 더 두둔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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