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국민 먹거리와 농업·농민의 현실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2 21:01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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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얼마 전 1명의 농민이 과거 26명의 국민 먹거리를 생산했다면 현재는 155명의 먹거리를 생산 중이고 2050년엔 265명의 먹거리를 생산해야 한다는 통계를 봤다. 그만큼 현재 대한민국의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농민들은 언제까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30년 전 내가 농촌에 들어올 때만 해도 농민에게는 여유도 있었고 농한기도 있었다. 금전적인 부분을 차치하고 농한기가 있으니 삶의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함께 제삿밥도 나눠 먹고 비가 오면 전도 부쳐 먹고 그야말로 농촌은 살아있는 공동체였다. 그 당시 농민들은 농사를 짓는 것에 자긍심도 있었다. 빚을 내서 하우스도 짓고 농기계도 샀지만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시작으로 시작된 수입개방은 1995년 WTO 출범 이후 본격적인 자유무역체제로 들어섰다. 이후 양자 간 FTA를 넘어 이제는 고물가의 희생양으로 농산물값을 때려잡는 TRQ 수입까지 겪으면서 완전한 수입개방으로 농업·농촌은 파탄이 났다. 이 시기부터 정부 농정은 농민들에게 규모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농산물 가격보장이 되지 않아 작은 규모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자 농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농사 규모를 계속 확대했다. 그에 맞춰 농기계 또한 몇백, 몇천에서 억 단위가 넘는 대형으로 변해갔으며, 농민들은 점점 더 빚쟁이가 돼갔다.

1980년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은 350원, 지금은 6,500원이다. 거의 20배 정도 올랐는데 여전히 20kg 쌀값은 3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5만원 그 정도 혹은 더 낮은 금액이다. 생산비를 포함하면 오히려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맞다. 농사를 확대하면 할수록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해 비료가격이 2배로 뛰었고 각종 농기계에 들어가는 기름값과 인건비는 폭등했다. 거기에 비해 항상 농산물 가격은 정부의 물가 관리대상으로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자신이 받는 월급이나 상점에서 파는 물품이 30년 전 가격이라면 가만히 있겠는가?

얼마 전 통계청에서 농가소득을 발표했다. 농가당 연간 농업소득이 949만원이라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경남은 512만원으로 전국에서도 최하위다. 월 5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내년 농사비용, 생활비, 애들 학비 등을 대려면 돈을 다시 빌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때문에 요즘 주위를 보면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는 경우가 드물다. 농사로 생계유지를 못 하니 거의 모든 여성농민이 인근 공장이나 식당에서, 혹은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

혹자는 농민들이 보조금을 많이 받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실정을 모르는 소리다. 보조금은 쥐꼬리만하고 그마저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농민보다는 거대 농식품 기업에 대부분 몰아주고 있다.

이에 농민들은 항상 생산비도 못 건지는 농업활동을 해오고 있다. 게다가 농업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수입개방정책으로 항상 피해만 받아왔다. 이는 농민들을 도시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게 만들었고 농촌엔 더이상 청년들이 오지 않게 됐다. 이것이 농업·농촌의 현실이다.

거기에 기후위기로 농사짓기는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다. 작물을 심기 전에는 비가 잦아서 애를 태우더니 비가 필요한 시기에는 긴 봄 가뭄이 찾아왔다. 6월에는 때아닌 우박으로 고추 등 노지작물과 과수 농가 등이 피해를 입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곡물 파동으로 식량위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내 농산물이 모자라면 수입하면 된다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왜 선진국이 농민의 소득을 보전하면서 농업을 지키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자국의 농업을 지키지 않고 수입만으로 국민의 먹거리를 지킬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농업을 무시하고 농민을 말살하는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고 백남기 농민이 그것을 증명했다.

오늘도 많은 농민이 논·밭으로 나간다. 국민의 먹거리를 지키고 농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이러한 농민들에 의해 농업은 계속 유지돼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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