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누구를 위한 식량안보인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고위급회의를 보며

  • 입력 2009.02.09 12:04
  • 기자명 홍형석 전농 대외협력부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26, 27일 양일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100여개 나라의 고위급 관료들이 참가한 식량안보 고위급회의가 열렸다. 한국에서는 외교통상부의 오준 다자외교조정관이 이끄는 대표단이 회의에 참가했으며, 이 자리에서 정부는 향후 3년간 식량위기 해결을 위해 1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서 정부가 지원대상에서 북한을 제외한 문제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지만 차치하고 식량위기문제에 대해서 집중하고자 한다.

이번 식량안보 고위급회의에서는 지금 당면한 식량위기의 중요성이 크게 제기됐으며, ‘조용한 쓰나미’라고 불리는 식량위기를 해결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논의됐다. 또한 자크 디우프 유엔 식량농업기구 사무총장은 2050년까지 식량생산을 2배로 늘려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기아 해결을 위해서 매년 엄청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가깝게 쌀 자급률이 90%를 넘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심을 먹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이 있으며,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식량안보 고위급회의는 이러한 식량위기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하는 자리가 아닌, 누가 얼마나 돈을 기부할 것이며, 그 돈을 어디에 쓸 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회의가 되어 버렸다.

지금의 식량위기의 원인은 바로 신자유주의 농업과 무역정책에 있다. 값싼 농산물로 3세계 국가들의 농업기반을 파괴하고, 토지를 빼앗고, 농민들을 농촌에서 몰아내는 주범은 바로 신자유주의이며, 이를 IMF, 세계은행이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서 모든 이익을 챙겨가는 자가 바로 초국적농식품복합체인 것이다.

하지만 고위급회의에 모인 이들은 진정한 식량위기 해결을 위하여 지속가능한 농업의 발전, 식량에 대한 투기방지, 농업연료(일명 바이오연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전혀 ‘바이오’하지 않다)문제 등을 논의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을 각국에 강요하고 있는 IMF와 세계은행, 식량 투기를 일삼고, 이익만을 앞세우는 몬산토와 같은 초국적기업이 후원하는 회의에서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원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하면서 회의에서는 또다시 ‘녹색혁명’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비료와 농약을 더욱 많이 투입하고, 가능하면 GMO와 같은 작물을 대규모로 경작함으로써 식량생산량을 늘려야한다는 생각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구는 지금도 세계 인구를 먹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식량의 올바른 분배를 통해서 우리는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녹색사막을 가져오는 고투입의 파괴적인 농업이 아닌 소농·가족농 중심의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어디서든지 가져다 먹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식량안보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지금의 식량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각 나라가 자국의 식량과 농업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전 세계 민중이 가지는 식량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식량주권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진정으로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 / 홍형석 전농 대외협력부장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