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교정의 큰 나무 어르신들

  • 입력 2023.06.25 18:53
  • 기자명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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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횡천에서 청학동 가는 길, 청암면에 있는 청암중학교 들머리에 커다란 돌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큰 산 아래 큰 인물 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지리산 사람들에게 지리산이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지리산 아흔아홉골 그중에도 가장 명당자리에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는 마을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지만 인구 절벽의 시대를 증명하듯 숱한 학교들이 문을 닫거나 또 합쳐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학교는 지속 가능한 우리들의 미래를 보장해줄 첫 단추임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아이들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이 들려오는 지리산 자락의 학교와 그 학교를 굽어살피고 있는 큰 나무 어르신들을 만나보았다.

천령유치원 개오동나무를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는 선생님.
천령유치원 개오동나무를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는 선생님.
개오동나무 아래서 뛰놀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개오동나무 아래서 뛰놀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함양 천령유치원 개오동나무(수령 170년)

함양읍에서 지리산으로 드는 지안재와 오도재로 향하는 24번 지방도를 가다 보면 함양읍을 벗어나기 전 길가에 자리한 천령유치원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 있던 석복초등학교가 폐교되었고 2001년 그 자리에 천령유치원이 문을 열었는데 현재 150여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군 단위로는 규모가 제법 큰 유치원이다.

교정을 지키고 있는 개오동나무 어르신은 해마다 6월 초쯤이면 종처럼 생긴 꽃을 풍성하게 피우는데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과 어울려 그 모습이 장관을 연출한다. 꽃이 질 때는 오동나무처럼 통째로 땅에 떨어져 또 한 번 꽃을 피우는 개오동나무는 열매가 노끈처럼 생겨 노나무라고도 불리는데 나무 아래 세워진 공룡 모형들과 어울려 신비로움을 더한다.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는 운봉초등학교 교정의 느티나무 풍경.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는 운봉초등학교 교정의 느티나무 풍경.

남원 운봉초등학교 느티나무(수령 450년)

지난해까지 111회 졸업생을 배출한 100년 전통의 운봉초등학교는 해발 450m 운봉고원에 자리 잡고 지리산 둘레길이 교문 앞을 지나는 말 그대로 지리산다운 학교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 학교 운동장에서 나이가 무색할 만치 늠름한 풍채의 느티나무 어르신은 긴 세월 변함없이 그 자리 지키고 계시는데 그 비결은 왁자지껄 뛰노는 아이들의 기운을 받아서이리라. 때마침 나무 아래서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사람과 나무가 만나면 왜 쉴 휴(休)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신비스러운 모습의 왕성분교 앞 500세 푸조나무 어르신.
신비스러운 모습의 왕성분교 앞 500세 푸조나무 어르신.

하동 화개초 왕성분교 푸조나무(수령 500년)

올해 3월 유치원 3명에 1학년 4명의 아이들이 새 식구로 입학한 왕성분교, 필자가 왕성분교를 자주 찾는 까닭은 서산대사길로 알려진 지리산옛길 때문이다. 의신마을에서 출발, 왕성분교가 있는 신흥마을까지 의신계곡 따라 걷는 4km 남짓한 지리산옛길은 서산대사가 즐겨 걸어 서산대사길이라고도 불리는데 계곡 물소리 들으며 호젓하게 걸을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하게 걸을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이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왕성분교 교문 바로 앞에는 최치원 선생의 지팡이가 자라 500년 넘는 세월 그 자리 지키고 있는 푸조나무가 나그네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푸조나무는 팽나무와 비슷하지만 껍질이 좀 더 검어서 검팽나무라고도 불리는데 이 왕성분교 푸조나무는 우리나라 푸조나무 중 가장 덩치가 크다고 한다.

함양초등학교 학사루 느티나무 어르신의 위용.
함양초등학교 학사루 느티나무 어르신의 위용.

함양초등학교 학사루 느티나무(수령 500년)

군청과 교육청이 모여 있는 함양읍 중심지에 있는 함양초등학교는 120년 전통을 지닌 학교로 현재 학생 수가 500명이 넘는다. 이 학교 교정에 자리하고 있는 학사루 느티나무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마흔 살 넘은 나이에 얻었던 아들을 홍역으로 잃게 되자 그 마음을 달래려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근처에 있던 학사루는 증·개축을 거듭하다가 1979년 함양군청 앞으로 옮겨서 세워졌다.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을 100년 넘게 보살펴주는 학사루 느티나무의 그 튼실한 몸통을 보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저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참으로 고마운 느티나무 어르신임이 분명하다.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해서 22년째 유정란 농사를 짓고 있는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의 지리산 자락 사진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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