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아들과 딸③ 멀쩡한 팔에 붕대를 감고 우체국에 간 사연

  • 입력 2023.06.25 18:00
  • 수정 2023.06.26 06:2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딸은 어차피 놈의 집으로 갈 자식잉께, 글자를 갈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제, 글을 갈쳐서 시집 보내 놓으면 사네, 못 사네, 함시로 친정에 이렇게 저렇게 편지질이나 해싼다고….”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한 할머니 학생(73세)의 얘기다. 딸을 차별하는 가장 원시적인 근거로 삼았던 것이 이른바 ‘출가외인’이라는 인식이었다. 따라서 일단 시집을 가고 나면 철저히 그 집 식구가 돼야 하는데, 글자를 가르쳐서 보내면 쓸데없이 친정에 ‘편지질’이나 하면서 시집살이의 고충 따위를 이러저러 고자질이나 할 게 뻔하니…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한편 순창읍 교성리에서 태어난 조옥선 할머니는 원래 이름이 ‘딸막이’였다. 위로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래로 딸 셋이 줄줄이 태어나자, 제발 ‘딸은 그만’하고 아들을 점지해 달라며 지은 이름이었다. 어쨌든 이름 덕분이었는지 막내로 아들이 태어났다는데.

“집이 그리 가난하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첫째인 오빠는 고등학교까지 보내면서 그 아래 딸 셋은 국민학교도 안 보냈어요. 막내 남동생은 내가 수(繡)를 놓아서, 바느질 품을 팔아서 고등학교까지 가르치고….”

그렇게 까막눈으로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다.

조옥선씨의 남편은 고등학교를 나온 건설업자였다는데, 부부 사이라는 게 참 묘한 관계여서, 조씨는 남편에게 자신이 초등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더군다나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도 털어놓지 못했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다는데, 그 자존심을 유지하느라 그녀가 겪었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조옥선씨 부부가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자.

-나 전주에 출장 갔다 올 것인디, 읍내서 목재상 하는 김 사장이 이따가 집에 올 것이구먼. 내가 돈 받을 것이 있응께, 돈 갖고 오면 당신이 영수증 조깐 써주고 받어놓으라고.

-여보, 나는 뭔 돈인지도 모르고 필적도 안 좋은디…영수증은 당신이 써놓고 가야제.

-방안에 영수증 도장 찍어놓은 것 있응께, 거그다가 얼마 받었다고 액수만 써 주면 돼.

남편이 그런 부탁을 하고 나가던 날, 하루 종일 가슴이 뛰더라고 했다. 조씨는 하는 수 없이 김 사장이 돈을 가지고 나타날 즈음에 일부러 집을 비우고 나가버렸다.

또 한번은 남편이 통장과 도장을 내놓고 나가면서 이런 부탁을 했다.

-여보, 나 오후에 시멘트 사러 가야항께, 우체국에 가서 돈 삼백만 원만 찾어다 놓소.

엉겁결에 통장을 받아놓긴 했는데, 도통 글자를 모르는 판이니 무슨 수로 우체국에 가서 청구서를 작성하고 돈을 찾는단 말인가. 우체국 직원한테 부탁을 하자니 젊은 여자가 한글도 모른다고 흉볼 것 같고…. 조씨는 한나절 내내 애를 끓였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오른팔에다가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갔어요. 우체국 직원한테 청구서를 대신 작성해달라고 부탁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더라고요. 어휴, 그때 생각만 하면…지금도 눈물이 나요.”

글자 모르는 것만큼 무서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조옥선씨는, 남편을 꼬드겨서 드디어 한글을 배울 궁리를 한다. 하지만 남편에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건 한글이 아니었다.

-여보, 나도 한문 공부를 조깐 해야 쓰겄응께, 하루에 다섯 글자씩만 공책에다 적어 줘요.

-흐음, 뭔 글자부터 적어야 쓰까? 잘 보드라고, 요것이 사람 인(人)자 아니라고. 여그다가 작대기 두 개를 옆으로 긋으면 하늘 천(天)자가 돼. 사람하고 하늘하고 똑같다, 그런 말이제. 그란디 그 하늘을 뚫고 올라간 글자가 바로 지아비 부(夫)자라네. 알겄능가?

-베락맞을 소리는 그만 하시고…. 한문만 적지 말고 그 밑에다가 요것은 하늘 천자다, 사람 인자다, 남편 부자다…그렇게 한글로도 적어 줘야 외우면서 연습을 할 것 아니오.

한자를 배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자 밑에 훈음으로 달아준 한글을 익히겠다는 요량이었다. 친정 부모가 그 눈물겨운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국 조옥선씨의 남편은 아내가 문맹자였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일찍 세상을 떴다. 그리고 10년 후, 이제 그 할머니는 여기 한글학교에 나와서 ‘시멘트 여덟 포대’ 같은 어려운 글자도 척척 그려낸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