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72] 작은 희망을 본다

  • 입력 2023.06.25 18:00
  • 수정 2023.06.26 06:26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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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얼마 전 대산농촌재단으로부터 원고 부탁을 받았는데, 199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약 30여년 간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이 어떻게 변화했고 미래는 어떨 것인지에 대해 꽤 긴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이었다. 써 보겠다고는 했는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지난주 말에야 겨우 완성해 보냈다.

그 원고를 쓰면서 느낀 것은, 우리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농업·농촌·농민 부문은 늘 외세의 간섭과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돼 온 질곡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 하에서의 농업은 일제의 전쟁을 위한 수탈의 대상이었고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현재까지 군사정권은 물론 그 이후의 모든 정부는 공산품수출 주도형 개방경제를 통한 성장정책을 표방하면서 농업·농촌·농민 부문은 정책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다. 1945년 출발한 GATT 체제와 1995년 출범한 WTO 체제, 그리고 2000년대의 한-미 FTA를 비롯한 수많은 FTA는 세계 경제와 한국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본격화된 1945년 이후 현재까지 약 80여년, 농산물 무역 자유화가 본격화된 1995년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농민·농촌·농업은 어떤 상황에 있을까. 현장에서 바라보는 현실은 암담함 그 자체다.

농민은 늙어가고, 아픈 곳 많고, 농민 내부의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어 농민의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팍팍해졌다. 인건비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자재비는 최근 30% 이상 올라 수익성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가 노력비를 비용으로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낮은 수익성에도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자긍심을 갖는 농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농촌 공동체는 점점 비어가고 있고 활력을 잃었다. 농촌이 농촌인 것은 농업과 농민이 지역의 경제와 문화와 공동체를 이끌어 가기 때문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농민·농업 없는 농촌은 이미 농촌이라 할 수 없다. 이는 결국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 소멸로 이어진다.

농업은 위기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농민들은 기후·환경 변화로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폭우, 폭설, 우박, 냉해, 병충해가 상상을 초월할 때가 너무 빈번하다. 이에 더해 경쟁력을 강조하는 농산물 시장 개방화 시대에는 중소 영세농 구조인 우리 농업으로서는 소위 가격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80년간 지속된 개방경제 체제를 바꿀 수 있을까.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소위 높은 사람들의 인식과 철학을 바꿀 수 있을까. 젊은 농민을 농업에 종사케 하고, 농사를 안 짓더라도 농촌지역에 젊은이들이 오게 하고, 스마트팜이나 푸드테크로 농업과 관련산업을 고도화하면 우리의 농업·농촌·농민 문제가 해결될까. 또 그렇게 되기나 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작지만 위대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농업·농촌 현장에서 뛰는 사려 깊은 선구자나 농민·시민사회 단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을 실행하고, 토종종자를 보급하며, 도시인들과 교류하고, 마을만들기 사업 등을 직접 하는 사람들과 활동가들이다. 이들을 존경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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