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의 마지막 밥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9 06:3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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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동학군, 마지막 밥을 받다, 2014, 110×56cm, 목판화
박홍규, 동학군, 마지막 밥을 받다, 2014, 110×56cm, 목판화

갑오년 5월 31일 농민군이 용머리고개를 넘어 전주성에 입성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때가 오시(오전 11시~오후 1시)쯤 되자 장터 건너편 용머리고개에서 일성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 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헤어져 달아났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편 고함을 지르며 한편 총질을 하였다. 서문에서 파수 보는 병정들은 어찌 된 까닭인지를 몰라 엎어지며 자빠지며 도망질을 치고 말았다. 삽시간에 성 안에도 모두 동학군의 소리요 성 밖에도 동학군의 소리다. 이때 전봉준 대장은 천천히 대군을 거느리고 서문으로 들어와 좌(座)를 선화당(감사의 집무실)에 정하니 어시호 전주성은 이미 함락이 되었다.”

전라감사 김문현은 피난민 복장으로 변복하고 멀찌감치 공주로 달아났다.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전주성 함락 소식에 경악한 조정은 전주성이 함락된 지 불과 사흘 만에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임금과 왕비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기 백성을 진압하려 했으니 이게 제정신인가?(박은식 ‘한국통사’)”

한편 하루 사이로 농민군을 뒤쫓아온 경군(홍계훈)은 용머리고개를 넘어 완산에 진을 쳤다. 홍계훈은 자신의 경군과 증파된 강화영병, 감영병 등 1,500여 군사를 건지산, 기린봉, 오목대, 황학대 등에 배치하여 전주성을 에워싸고 곧바로 전주성을 향해 포를 쏘아대며 싸움을 걸어 왔다. 이날로부터 5월 3일(양력 6월 6일)까지 농민군과 관군 사이 매일 공방전이 벌어졌다.

5월 3일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다. 용머리고개를 가로질러 완산 주봉을 향해 육박해 들어가던 농민군들은 관군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하여 용장 김순명, 아기장수 이복용을 비롯하여 200~500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내고 성 안으로 물러난다. 이때 전봉준 장군도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이날 전투를 마지막으로 농민군들은 더이상 관군과의 교전에 나서지 않았다. 완산 전투, 다섯 차례 전투에서 농민군 600~800명이 희생되었다. 근대화된 무기와의 화력 차이가 불러온 피할 수 없는 뼈아픈 결과였다.

그러나 관군과 농민군 어느 쪽도 결정적 승기를 잡고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으니 이는 당시 조성된 복잡했던 조선 정세와 깊이 연관돼 있었다. 농민군은 6월 11일(음력 5월 8일) ‘신변보장과 폐정개혁안 접수’를 조건으로 조정과 화약을 맺고 전주성에서 물러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청일 양군의 조선 상륙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자기 나라 백성을 적대시하고 심지어 자신의 군대마저 믿지 못한 조선 왕조의 무능과 사대주의가 불러온 엄청난 후과가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1년, 농민전쟁이 막을 내리고 대부분의 농민군이 희생, 처형되었다. 10만에서 30만명에 이르는 조선 백성이 봉건 왕조와 제국주의 총칼 아래 무리죽음을 당했다. 처형을 앞둔 농민군 앞에 고봉밥이 놓여 있다. 평생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을 초췌한 몰골의 농민군은 아마도 굶주릴 처자식 생각에 한 술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농민군이 전주성에 머물며 전투를 벌이던 5월 말 6월 초 이 시기는 오늘날 연중 가장 눈코 뜰 새 없는 농번기가 되었다. 오늘날 가장 전투적인 농민들이 모여 있는 전농조차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잊지는 말자. 갑오년 농민군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그들의 좌절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어떻게 규정짓고 있는지, 오늘날 우리가 넘어야 할 고개는 어떤 고개인지….

그럼 이제 끝난 것입니까? / 아니다 재는 또 있다. / 그럼 그건 어쩝니까요? / 그냥 두어도 좋다. 뒷날의 사람들이 다시 넘을 것이다. / 우린 우리의 재를 넘었을 뿐. / 길이 멀다. 가자꾸나(이광재 ‘나라없는 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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