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Q. ‘농활’이 여태까지 ‘농촌봉사활동’의 줄임말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줄임말이었네요? 왜 농촌봉사활동이 아니라 ‘농민학생연대활동’이라고 표현하는 건가요?
A. 농활에 앞서 일제강점기 ‘브나로드 운동’으로 대표되는 농촌계몽운동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다양한 단체들이 농가 일손을 돕자는 취지로 농촌봉사활동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농촌계몽운동은 ‘계몽’이란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농민을 ‘가르칠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운동이었고, 농촌봉사활동은 단발성 봉사활동으로 그치기에 ‘지속적 교류’ 측면에선 한계가 있었습니다.
농활은 1980년대 후반부터 학생운동 조직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및 그 후신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주도로 대학 단위에서 전개됐습니다.
농활의 주요 특징은 학생운동 조직과 농민운동 조직의 연계하에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말 그대로 농민과 학생의 ‘연대’, 즉 끈끈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 농촌의 모순 해결 및 학원 민주화 등을 함께 해나가는 의미도 컸습니다.
농활을 통해 학생들은 농민의 삶을 배웠고, 농민들도 학생들의 투쟁에 함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민-학생 간의 상시 교류 과정에서 농민의 삶을 살기로 결심(농투신)하는 학생들도 늘어났습니다.
요컨대, 농활은 도시에서 온 학생이 농민을 가르치려 했던 과거의 농촌계몽운동과도, 단순히 농작업을 돕는 데만 목적을 두는 농촌봉사활동과도 차별화되는 활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