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협중앙회장’ 자리는 적폐다

  • 입력 2023.06.11 18:00
  • 수정 2023.06.14 23:3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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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모임(농협조합장 정명회)에 초빙된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의 강의 중 한 대목이다. 조합장 당선을 위해 너도 나도 목을 매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농협 조합원들은 어지간해선 조합장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조합장들은 조합을 경영하다 손실이 나도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법적 책임이 없지만, 일본 조합장들은 일반적인 조합 손실도 자비로 변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건강한 조합의 경우 조합장이 되려는 사람은 오랜 시간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해서 조합장 자리를 물려받는다. 여러 사람의 공동자산을 관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책임이라 생각된다.

일본 농협과 구조와 규모가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우리나라엔 변상 책임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조합장들이 더 많다. 비상임조합장들을 중심으로, 조합 경제·신용사업을 상임이사에게 위임하고 대외적인 대표 자격만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상임조합장의 이권이 약한 건 아니다. 오히려 상임보다 더 긴 임기를 보장받으면서 조합을 장악하고, 조합 경제·신용사업을 좌지우지하면서, 상임 수준 혹은 더 많은 억대 연봉을 수령한다. 공식적인 업무와 책임 범위에 비해 과도한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위를 농협중앙회로 끌어올리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농협중앙회장은 농협법에 비상임으로 규정돼 있고 그 업무는 회원조합 및 조합원 권익증진을 위한 대외활동에 국한된다. 나머지 모든 사업은 사업전담 대표이사, 전무이사 등에게 위임한다. 하지만 농협중앙회장이 4년 동안 받는 급여는 퇴임공로금과 농민신문사 회장 급여를 포함해 표면적으로만 40억원에 육박한다. 중앙회·지주회사·계열사 임직원에 대한 실질적 인사권을 비롯해 전국 회원조합장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도구도 손 안에 가득하다.

책임이 없고 ‘젖과 꿀’은 넘쳐나는 자리야 어디든 있을 수 있지만, 기자가 아는 한 우리 사회에서 그 정도가 가장 비정상적인 자리는 농협중앙회장이다. 그러니 선거는 혼탁하고 비리는 만연하고 연임을 위한 추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비상임이면 비상임답게, 수행하는 업무 만큼의 적정한 보수를 매기고 모든 특권을 차단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농협중앙회장은 그 자리 자체가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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