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71] 뛰어다니시라

  • 입력 2023.06.11 18:00
  • 수정 2023.06.12 06:3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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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매년 4월이면 친환경인증센터에서 문자가 온다. 인증 기간 1년이 만료돼가니 재인증 심사서류를 두 달 전까지는 접수하라는 내용이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받았다. ‘아이고, 또 1년이 지나갔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동시에 친환경 농사를 8년 동안 지속하고 있는데 이걸 일 년에 한 번씩 인증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똑같은 땅에서, 똑같은 사과 농사를, 똑같은 방법으로, 한두 해도 아니고 8년여를 지어 오고 있는데 뭘 그리도 매년 심사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다.

무농약 3년, 유기농 전환기 3년, 유기농 3년 차 정도 되면 그 농부를 어느 정도 신뢰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잔류농약 검출 여부가 중요한 심사조건인, 소위 결과 중심 인증방식이 처음 친환경 인증받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데도 매년 받도록 돼 있으니 솔직히 짜증이 나기도 한다.

또 2년에 한 번씩 의무교육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데 요즈음은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게 돼 있으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영동지역 전체 친환경 농민을 한 곳에(당시엔 삼척시) 모아 놓고 두세 시간씩 교육이라는 것을 받도록 한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 교육 내용이라는 것이 친환경 농가라면 이미 알고 있거나 기초적인 초급 수준에 불과했다. 그로 인해 농민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요즘은 현장교육이 좀 바뀌었고, 온라인 교육을 받아도 돼서 나는 주로 이를 이용한다. 문제는 여전한 그 내용의 빈약함이다. 인증 농가의 품목, 규모, 지역 여건, 토양 조건, 친환경 농사 지속 연한 등과 같은 다양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 요식행위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다가 국가(민간인증기관)에 내는 인증비용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고, 심사비를 선입금해야 심사서류가 접수되며, 그때부터 소위 인증절차가 시작된다. 나 같은 경우 5월에 심사비 50만8,000원을 미리 목돈으로 냈다. 지방정부가 인증비의 80% 정도를 지원해 주는데 그것도 연말쯤에나 지급된다. 그 보조를 받기 위해서는 온갖 서류를 갖춰 기술센터에 직접 방문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나마 심사라는 것을 거쳐야 한다. 매년 같은 방식이다.

농민 입장에서는 기왕에 보조해 줄 것이라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의해 창구를 단일화하면 될 것을 덥고 무더운 날 야외에서 일하느라 이것저것 바쁜 농민들을 꼭 사무실로 오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다. 친환경 농사는 정말 어렵고 힘들다. 물론 누가 하라 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직불금, 보조금 몇 푼 받으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부분의 친환경 농부들은 인간·자연·환경·생태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하는 소신과 철학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인증마크와 돈 몇 푼 지원해 준다고 친환경 농사를 짓는 현장의 농민들을 이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관내에 몇 명 되지도 않는 친환경 농민들을 사무실로 부를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뛰어다니기 바란다. 그게 이들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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