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정부, ‘반축산’ 강행 여파로 연정 실패 위기

사육두수 30% 감축 추진, 농민당 창당·극렬시위 불러
‘농민-시민운동’ 정부 불신 시민들 지지에 제1정당 도약

  • 입력 2023.06.08 20:10
  • 수정 2023.06.09 08:5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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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네덜란드의 신생정당 농민-시민운동(BBB)의 당수이자 하원의원인 캐롤라인 판 더 플라스가 지난 4월 지방선거 승리 직후 하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BBB 제공
네덜란드의 신생정당 농민-시민운동(BBB)의 당수이자 하원의원인 캐롤라인 판 더 플라스가 지난 4월 지방선거 승리 직후 하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BBB 제공

 

최근 네덜란드에서는 태어난 지 갓 3년을 넘긴 농촌 태생 신생정당이 지방선거에서 단숨에 1위를 획득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정부와 국회가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축산정책을 강행하다 농민 저항에 맞닥뜨렸고, 평소 정치에 회의감을 느끼던 국민들이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농민정당은 집권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시민들이 기후정책을 거부한 이번 사례는 향후 전 세계의 탄소중립 대응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지난 2019년 10월 대규모 농민시위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탄생했던 ‘농민-시민운동(BoerBurgerBeweging, BBB)’이다. 매우 높은 수준의 투표 비례성 보장을 추구하는 이 나라에선 모든 직접 선거를 정당 비례대표제로 치르며, 사실상 전국이 단일 선거구다. BBB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19.4%를 득표해 정당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간접선거로 상원을 구성하는 네덜란드에서는 정당별 지방의원의 비율이 곧 상원의 정당별 의석수를 결정하므로, 상원에서는 지난 6일을 끝으로 75명 중 39명이  자리를 떴다. BBB는 여기에 16명의 상원의원을 입성시키고 연정 4당의 과반을 저지하며 ‘최대어’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러한 격변에는 다름 아닌 정부의 새로운 농축산업 정책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2021년 9월 네덜란드 국립공중보건환경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유출됐는데, 농축산업의 질소배출량이 국가 전체의 46%를 차지할 정도로 과다하고 특히 가축분뇨로 인한 오염으로 인해 환경이 위기에 처해있다며 축산업계를 직접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또 이를 근거로 정부는 농업 부문 질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두 가지 정책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하나는 비육우·낙농·가금·양돈을 통틀어 사실상의 사육두수 감축(30%)을 위해 300억유로, 우리 돈 약 42조원을 들여 축사를 강제 매입하겠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가축의 배출량에도 세금을 매겨 그 재원의 부담을 절반 이상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같은 시기 연립정부의 제2정당 D66은 집약적 축산업이 경제에 기여하는 비율이 1%에 불과하다고 공격하며 사육두수의 감축 수준이 50%에 이르러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같은 계획에서 농민들은 실현가능성 뿐만 아니라 축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찾지 못했고, 곧 네덜란드 전역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대규모 농민시위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농업전문지 기자·농민단체 활동가 출신인 캐롤라인 판 더 플라스는 대중주의 정당 BBB를 창당한다. BBB는 2021년 열린 네덜란드 하원선거에서 1석만을 얻는데 그쳐, 역시나 ‘여느 대중정당’처럼 험난한 길을 걸을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은 왜 농민들과 농민의 이익을 지지했나

그러나 ‘사육두수 감축’이라는 초강수는 유럽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외에서 BBB가 주도하는 시위는 2022년을 시작으로 다시 거세졌고, 급기야 살해 협박과 가축분뇨 투척, 공권력과의 대규모 대치까지 벌어지는 등 갈등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무력충돌도 불사하며 정부에 거침없이 대항하는 모습을 통해 BBB는 농민들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여가고 있던 일반 대중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는데, 여론 조사기관에 따라 다르나 농민 시위에 대한 지지는 2022년 가을에도 40~60% 수준을 기록했다.

네덜란드는 분명 농업수출액이 전 세계 3위 수준인 농업강국이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령화와 생존을 위한 집약은 피하지 못해 현재 전체 인구 1,750만명 대비 농민은 1%, 농가 수는 7만여호에 불과하다. 빈약한 농촌 인구에도 불구하고 BBB가 대중적인 지지를 끌어올 수 있었던 건 ‘버림받았다’고 주장하는 농민들의 분노를 보며 시민들이 똑같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캐롤라인 판 더 플라스는 선거 승리 이후 하원에서의 연설에서 시민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투표에 참여했을지 생각해보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그는 “불만 있는 유권자들이 이번에는 선거날 집에만 있지 않았다. 단지 (농민들이 문제 삼는) 질소배출 문제만을 위해 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라며 “네덜란드 사람들은 보육 문제, 자살 문제, 주택 문제, 막대한 인력부족 등 전부 언급하기도 힘든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고치지 못하겠다면 물러나라”라고 압박했다.

지방선거 직후 벨기에의 ‘드 스탠다드’는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는 농민이 더 이상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지 않지만, 수도 헤이그나 브뤼셀이 국민을 이해하고 대변하지 못한다는 느낌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라며 ‘또 다른 정치’에 대한 기대가 BBB를 지지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의 ‘데 텔레그라프’는 “BBB는 도시에 안주하는 기득권에 대한 항의를 끌어 모았고, 정부는 유권자들의 이번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 밖에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다이 벨트’는 이번 선거 결과를 단순 농업계만의 저항이 아닌 ‘기후정책에 대한 서민들의 반란’으로 표현하며 “이와 같은 일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정권 위기에 기후정책도 풍전등화

한편 BBB의 과격함과 폭력성은 이에 거부감을 느낀 진보지지층의 결집도 부추겼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마르크 뤼테 총리와 연정4당의 지지율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BBB 다음으로 많은 표심(17.2%)을 끌어당긴 건 노동당-녹색좌파당 연합으로, 양쪽에 끼인 연정4당은 도합 27.9%만을 득표하며 참패했다.

사실상 양당제를 통해 정치가 기능하고 있는 우리의 시선에서는 이 숫자들이 그다지 놀랍지 않을 수 있지만, 다당제인 이 나라에서 제1정당이 정국을 이끄는 방식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판이 뒤집어지기 직전이라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네덜란드는 정부수반(총리)을 하원의 제1정당에서 선임하는데, 단독 정당으로는 의석 과반을 확보하기 어려워 통상적으로 공동 정책목표를 세워 이에 동의하는 정당과 협상해 의회의 과반을 채우고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형태로 정국을 주도해왔다. 현재 제1정당인 자민당(VVD) 또한 하원 의석수가 150석 중 34석(22%)에 불과하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BBB의 지지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BBB는 현 집권당처럼 우파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정치적 이념보다는 대중주의가 뿌리다. 전통적 우파-중도우파는 물론이고 민족주의 극우정당과도 연합이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어 추후 BBB가 하원에 진입할 경우 어떤 성향의 정부가 구성될지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EU의 탄소중립 대응방안 실천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곤경에 처한 만큼, 네덜란드의 향후 행보는 주변국들의 관련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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