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의 역전’이 필요하다

  • 입력 2023.06.04 00:00
  • 수정 2023.06.04 20:5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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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이 있어서 대통령실 조직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농업정책을 담당하는 농해수비서관은 여전히 경제수석 밑에 소속돼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서열은 바뀌지 않는다. 문재인정권 시절에도 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정책은 경제수석에 종속돼 있었다. 이 서열은 역전불가능한 것일까?

농업이 경제논리에 종속돼서야

농업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된 상황에서, 식량주권의 확보는 요원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경제관료들의 머릿속에는 ‘식량은 수입해서 먹으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예산은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업정책은 경제정책의 하위 서열에 있고, 개발정책보다 후순위에 있다. 이 서열이 역전되지 않는 이상,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농지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책 중에 경제정책에 종속되지 않는 정책분야는 없을까? 바로 국방·안보 분야가 그렇다. ‘안보가 위태로운데 무슨 소리야’라는 한마디에 정리가 되는 것이다. 예산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실 조직상으로도 국가안보실은 대통령비서실과는 동등한 위상의 조직이다.

그런데 식량도 안보문제이고 주권문제이다. ‘식량안보’라고 하든 ‘식량주권’이라고 하든, 중요한 것은 경제논리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삼면이 바다이고 외부로부터의 식량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에서, 농업정책을 경제논리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기후위기가 낳을 식량위기를 감안하면 농업정책은 국가공동체의 안위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서열의 역전’이 필요하다. 농업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동등한 위치에 놓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대통령실 조직이든, 정부 조직이든 개편을 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초래할 식량위기를 감안하면 농업정책은 국가공동체의 안위에 관한 것이다. 식량도 안보문제이고 주권문제이다.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서울-수도권 집중이 낳은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서열의 역전’일 수 있다. 지난 4월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일대에서 열린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가한 시민들이 각양각색의 손팻말을 들며 기후위기 시대, 기후정의를 향한 사회공공성 강화와 생태학살 중단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기후위기가 초래할 식량위기를 감안하면 농업정책은 국가공동체의 안위에 관한 것이다. 식량도 안보문제이고 주권문제이다.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서울-수도권 집중이 낳은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서열의 역전’일 수 있다. 지난 4월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일대에서 열린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가한 시민들이 각양각색의 손팻말을 들며 기후위기 시대, 기후정의를 향한 사회공공성 강화와 생태학살 중단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우리 머릿속의 서열은?

서열은 정부 조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이라는 ‘지역 간 서열’도 존재한다. 이 서열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도 있다.

농촌 지역을 다니다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귀향을 한 분도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다가 50대 중반쯤에 부모님 모시고 살려고 귀향을 했다는 분을 만났는데, ‘부모님이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이른 나이에 고향에 온 걸 창피하게 생각하시더라’라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은 고향에서 살고 싶어서 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도시에서 실패를 해서 고향에 왔나’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 ‘지역 간 서열’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서열이 존재하는 한, 서울과 대도시는 인구를 빨아들일 것이고, 농촌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은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지방소멸기금을 만든다고 해서, 이런 서열이 바뀔까?

물론 농촌의 의료, 주거, 교육, 돌봄, 환경, 문화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다. 귀향, 귀농, 귀촌을 하는 사람들의 정착을 돕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지역 간 서열’의 역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도 ‘서열의 역전’이 필요

그런데 이런 ‘지역 간 서열’은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하지 못함’의 근본 원인이 ‘지역 간 서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초저출산 현상도 ‘지역 간 서열’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서울의 출산율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낮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전국 평균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명을 기록했다. OECD 국가 중에 합계출산율이 1 이하인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런데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가장 낮은 0.59명을 기록했다. 그다음은 부산(0.72명)과 인천(0.75명) 순이다. 합계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은 비수도권이다. 그리고 시·군·구 단위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지역은 전남 영광군(1.81명)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출산율은 ‘행복하지 못함’과 연관돼 있을 수밖에 없다. 높은 주거비용과 생활비, 긴 출·퇴근시간,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는 서울의 숨길 수 없는 특징이다. 이것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에서 사는데도 행복하지는 못한 현상을 낳았다.

물론 출산율이 반드시 높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출산이나 육아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영역이다. 다만, 대한민국의 초저출산율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리고 낮은 출산율을 지역 간 비교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주거, 교육, 의료 등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도한 서울 집중, 대도시 집중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정치가 만든 ‘지역 간 서열’

그렇다면 이런 ‘지역 간 서열’은 왜 생겨난 것일까? 사실 ‘지역 간 서열’은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지역 간 서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도 일본의 사회학자인 야마시타 유스케가 쓴「지방회생(이상북스)」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은 것이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일본의 현실은 대한민국과 너무 닮았다. 일본에서도 출산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도쿄이다. 도쿄 역시 행복하게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일본의 젊은이들은 도쿄를 선호할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서열’이라는 것이다. 같은 일자리라고 하더라도 농촌보다 도시에서 하는 것이 더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을 하든, 전문직을 하든 농촌보다는 대도시, 그리고 도쿄에서 하는 것이 더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서열화’가 도쿄집중 현상을 낳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야마시타 유스케의 설명은 필자가 농촌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와도 일치한다. 그리고 필자의 돌아가신 부친이 충남 홍성으로 귀촌한 필자에게 ‘왜 농촌에 갔느냐. 뭘 하든 서울에서 하라’고 얘기하셨던 기억도 떠올랐다. 아마 농촌에 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주변에서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서열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일까? 야마시타 유스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본의 정치·행정구조가 이런 ‘지역 간 서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도쿄가 국가권력의 중심이고, 그래서 기업이 모이고 돈이 모이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도 쏠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를 하지만, 중앙의 공무원들이 지역의 중요자리를 순환보직처럼 내려오다 보니 결국 ‘지방은 중앙의 출장소’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행정부시장·부지사는 행정안전부 국장급 공무원이 내려오지 않는가?

‘서열의 역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서울-수도권 집중이 낳은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서열의 역전’일 수 있다. 기후위기를 생각해도 그렇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어떻게 지역분산적인 에너지체제로 전환하고, 세계적인 에너지-식량 수급 불안에 대비해 에너지-식량 자급이 가능한 사회로 전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런 ‘서열의 역전’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그보다는 농촌주민들부터, 이 사회의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진정으로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이런 ‘서열의 역전’을 위한 정부 조직 개편, 정책 우선순위 개편, 예산구조 개편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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