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저수지⑧ 저수지는 강태공들의 놀이터가 되고

  • 입력 2023.06.04 18:00
  • 수정 2023.06.05 07:0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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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70년 봄의 어느 주말, 개심저수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에는 저수지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외지 사람들이 몰려와서 복작거렸다. 그들 중 한 남자가 확성기를 켜 들었다.

-아, 아, 전국 낚시대회에 참가하신 회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정각 10시에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거기 부산팀하고 서울팀 선수들, 각자 제 위치로 가서 앉아 주세요!

장화리 주민들이 보기에 그들이 하겠다는 ‘낚시대회’라는 것은 참말 요상스런 행사였다.

-아니, 세상에 낚시질을…뭔 놈의 운동경기맨치로 시합을 다 하는 모냥이여, 허허, 차암.

-글씨 말이여.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어 있으면 고기들이 놀래서 달어나불 것 같은디.

그 무렵 마을 이장 일을 맡아보았던 이용만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수지가 생긴 초기에는 가물에 콩 나듯이 한두 사람씩 찾아와서 낚싯줄 담가놓고 놀다 가곤 했는데, 몇 년이 지나는 동안에 꾼들 사이에서 개심저수지가 입질이 좋다더라, 그런 소문이 났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해 봄에는 강태공들이 떼로 몰려와서는 전국 낚시대회인가 뭐 그런 걸 연다는 거요. 가까운 청주나 대전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광주 또 어디 어디에서 몰려오고…. 저수지 둘레가 4킬로가 넘는데 수백 명이 1~2미터 간격으로 빙 둘러앉은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 신기한 구경거리였지요.”

그래서 당시 이용만 이장은 자기 동네 저수지에 외지 손님이 찾아와 준 것이 너무나 반가워서 한밤중에 동네 스피커로 위문 방송을 하기도 했었다.

-아, 아, 저는 장화리의 이장입니다. 아무쪼록 멀리서 우리 개심저수지를 찾아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무쪼록 물고기 많이 잡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음날 ‘위문 방송’을 듣고 감격한 낚시꾼들이 막걸리를 사 들고 이장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요즘이야 전국의 저수지들은 농업용수를 공급해주는 고전적인 의미 외에도 ‘낚시터’의 다른 이름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물론 개심저수지에도 꾸준히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그렇다면 초창기에 자기 마을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이 하도 신기해서 오밤중에 환영한다는 방송까지 내보냈던 왕년의 그 이장님은, 지금은 몰려드는 낚시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필이면 우리 전답이 전부 물가에 있거든요. 물론 낚시꾼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 번 떼로 몰려왔다 하면 농작물이고 뭣이고 아예 마당밟기를 해버려요. 고기 잡는 데에 온정신을 팔고 있으니 남의 농사 망치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모양이지요. 주말에 와서 한 번 휩쓸고 가고 나면 사방이 쓰레기 천지고…. 찾아가서 뭐라고 하면 미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삿대질을 하면서 되레 따지고 드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귀찮아 죽겠어요.”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 마을 인근의 개심저수지는 예전이나 이제나 거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 마을의 나이 든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여름이면 뛰어 들어가서 멱을 감고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고 혹은 대나무 낚싯대에 명주실을 낚싯줄 삼아 물고기를 잡곤 했던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어받을 아이들이 지금은 없다. 70년대 초에는 그 마을에 초등학생만 7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찾아갔던 2004년 봄에는, 유치원생까지 합해서 겨우 다섯 명의 아이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농촌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우니까 젊은이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나버리고, 보시다시피 여기 노인정만 성업 중(?)이잖아요, 허허. 그나마 몇 명 있는 애들도, 우리 클 때 마냥 저수지에 가서 멱감고 썰매 타고 그런 것 하나요? 요즘이야 재밌는 놀이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 다섯 명의 아이들마저 컴퓨터나 게임기와 노느라고 저수지에 제 얼굴을 비춰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이 언젠가 고향을 떠나게 되면, 고향 마을 앞 개심저수지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 저수지에 유년의 추억 따위를 담아둘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 다만 ‘고향’이라는 풍경화 속에 물빛으로 누워있는, 관상용 소품으로만 기억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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