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건강관련 방송프로그램, 유감이다

  • 입력 2023.06.04 18:00
  • 수정 2023.06.04 20:40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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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작년 여름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앉을라치면 “아이구, 다리야”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일어나려면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 했습니다.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여겼는데 8월 말,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랫동안 걷고 난 후 점점 심해졌습니다. 땅을 딛는데 구름을 걷는 느낌이었고 이곳저곳으로 통증이 옮겨 다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국과 반찬들을 만들어 배달을 하는 날은 한숨으로 시작해 한숨으로 끝났고 다리를 헛디뎌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했는데 더했다 덜했다 오락가락하면서 나빠지는 쪽으로 치달았습니다.

제 통증 하소연을 듣고 본인이랑 똑같은 병이라고 말하는 선배환자님을 만났습니다. 관절문제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고 하지정맥도 아니라는 진단을 받은 후 헤매다 좀 큰 병원에서 척추관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약을 먹으니 많이 좋아졌다 했습니다. 오십 년 넘도록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이었고, 나는 다리만 아프고 허리는 안 아픈데 뭔 소리야? 하면서도 권유대로 좀 큰 병원의, 추천해주신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예약했고 역시 척추관협착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른 데는 몰라도 근골격의 건강은 괜찮다했던 근거 없는 자신감이 허망하였습니다. 처방해주신 약을 먹었는데 처음에는 감쪽같이 다리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처방 받은 약을 먹은 지 3주후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고 점점 더 심해졌으며 발을 내딛다 넘어질까 무서웠습니다.

한의원의 적절한 치료로 급한 불을 껐고 물속 걷기를 6개월 했더니 많아 좋아졌다는 또 다른 선배환자님의 이야기에 수영장을 다닌 지 세 달이 넘어갑니다. 넘어지고 아프면서 속상하던 마음도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좋아진거야 하는 감사함으로 변했습니다. 척추관협착증을 진단 받기에 내 나이가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함도 돌아보니 여성농민 무시하지 마라! 다 할 수 있다! 하며 힘들어도 논일, 밭일 앞장서고 아이 업고 집안일 하며 남들보다 허리를 혹사했는데 어쩌겠어하는 수긍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의 강도나 걷기연습 여부에 따라 덜했다 더했다 오락가락하면서 좋아지는 쪽으로는 가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주말, 비도 오고 다리도 아프니 집안일이나 하자하며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관절건강에 관련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요즘 관절까지 아픈데 잘 되었다 하며 집중을 했는데 의사도 나오고 환자들도 나오지만 주로 치료가 된 경험자들의 생활을 보여줍니다. 강조가 많이 되는 생활은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되어 이름도 어려운 특정식품 등을 먹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채널을 돌리는데 바로 전 방송의 특정식품 광고가 나옵니다. 다른 채널들도 매 한가지입니다. 방송프로그램 탈을 쓴 광고가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건강관련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이것 먹고 좋아졌다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이 땅의 농민들이 심고 가꾸는 농산물들은 거의 없고 외국에서 채취했다는 임산물, 농산물, 해산물들이거나 해외에서 수입한 약품들입니다. 이 땅의 농산물, 해산물, 임산물은 아픈 곳을 치료하는 데는 효과가 없나? 반문하다 이 땅의 농민, 어민, 임업인은 수입상들보다 돈이 없지 하는 결론이 납니다. 돈의 힘, 자본의 힘이 가장 강력한 시대에 수입상들이 방송에까지 큰 힘을 미치고 있구나 하는 씁쓸함도 듭니다.

몇십 년 쌓인 농사와 가사 등으로 몸이 아픈데 내가 짓는 농산물, 내 주변 땅에서 자라는 식물, 동물 등으로 내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정보는 전혀 없고 외국에서 건너온 상품, 약품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광고 아닌 광고, 방송 아닌 방송이 아주 많이 유감스럽습니다. 방송은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 대한 감시를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몸이 망가져 느끼는 무기력, 좌절감을 이용하여 특정식품, 특정약품 등을 먹으면 다 나을 수 있다는 식으로 아픈 이들을 현혹하는 방송은 사회에 대한 감시의 기능은 저버리고 수입상의 잇속을 채워주며 이윤을 얻는 건달노름일 뿐입니다. 보기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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