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온도

  • 입력 2023.06.04 18:00
  • 수정 2023.06.04 20:54
  • 기자명 김형표(제주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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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표(제주 성산)
김형표(제주 성산)

엘니뇨는 남아메리카 페루 및 에콰도르의 서부 열대 해상에서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엘니뇨는 스페인어로 남자아이 소년이라는 뜻, 반대로 그곳의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을 라니냐라고 한다. 라니냐는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태평양 서부의 수온이 2도 오르고 내리는 현상은 지구의 기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물의 온도의 변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규칙적으로 반복되어왔고, 일부에서는 지구환경 파괴의 생생한 증거로 이야기되곤 한다. 지구가 스스로 균형을 맞추려는 물의 온도변화를 지구온난화의 증후로 볼 수는 없지만 그 변화의 폭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2도 내려가고 2도 올라가던 현상이 4도 올라가고 4도 내려가는 정도라면 적절한 비유다.

2023년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트리플 라니냐가 끝나고 시작된 엘니뇨의 해다. 온도가 많이 올라 슈퍼 엘니뇨의 해로 예측된다. 미국 서부해안을 비롯한 남아메리카 대륙에는 태풍과 폭우가 이어지고 반대쪽의 인도네시아와 호조, 필리핀은 가뭄과 고온이 지속된다.

막연하게 가뭄과 고온, 혹은 폭우와 태풍으로만 분류되던 양쪽의 기후변화는 그 반대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이제는 엘니뇨 때문에 가뭄이 심해졌다거나, 폭우가 이어졌다거나, 태풍의 발생빈도가 높아졌다거나, 태풍의 강도가 강해졌다는 식의 강력한 기후변화에 대해 어느 누구도 동의와 부동의를 선택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특히 온도의 변화폭이 지구의 기후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농사는 시설하우스 등의 시설농사와 들판에서 하는 노지농사로 크게 나뉜다.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들판의 농사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엘니뇨와 라니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올해처럼 슈퍼 엘니뇨의 탄생이 예측되는 해엔 그 불안감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봄이 오면 과일나무에는 꽃이 핀다. 그 꽃이 수정을 하게 되면 열매로 변하는데, 작년과 올해는 이른 봄의 기온이 좋아 꽃이 일찍 왔다.

그리고 다시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피었던 꽃들이 모두 동해를 입어 열매가 자동 낙과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과농사를 망쳤습니다, 같은 말이 봄 온도의 변화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제주의 들판으로 옮겨오면 그 현상은 같은 듯 다르다. 제주의 봄 들판에는 2월말이면 봄 감자를 심고, 3월이면 단호박을 파종하고, 4월이면 메밀을 파종한다. 그리고 4월에는 밀감나무에 꽃이 핀다. 올해 제주의 봄 날씨는 전반적으로 아침과 저녁기온이 낮았으며 낮의 기온은 높았다. 그렇게 봄의 일교차가 커지면 들판의 식물들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비 오는 날이 많았으며 그 비는 며칠씩 반복적으로 내렸다.

그래서 감자 밭에는 많은 종류의 병들이 발생했다. 시들음병이나 줄기 썩음병에 걸린 감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감자가 과습과 잦은 비에 유난히 약한 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재배면적이 넓어진 메밀은 어릴 때 꽃이 왔다. 메밀 꽃은 통상 신장이 40cm에서 피기 시작해 60cm가 되어야만 정상적인 재배가 이루어지는데 20cm 지점에서 꽃이 피어버린다. 한낮의 기온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더 자라야 할 메밀에 갑자기 꽃이 피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제주의 봄은 갑자기 한여름처럼 무더워지기도 하고, 추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모든 들판의 봄 작물들은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약해졌으며, 더 많은 질병에 노출됐다. 그리고 5월에 발생한 태풍은 그 강도와 범위를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올해는 더 많은 태풍과 폭우를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일들이 단순히 페루 서부 바다 물의 온도 때문이라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것이지만, 2023년 제주의 들판에 벌어지는 봄 농사의 실패가 막연히 우울한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농업계에선 풍년이 오면 가격이 폭락해 빚더미에 앉게 되고, 오히려 흉년이 들어야 가격이 조금 올라가 오히려 농민들의 형편이 나아지는 이상한 현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기상이변과 폭우, 태풍이 불어 들판의 농작물들을 파괴하고 또 파괴해야만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한다. 농민들이 오히려 더 많은 마음속 태풍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건 그 어떤 기상이변보다도 무서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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