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이 생존권을 보장받을 권리

  • 입력 2023.06.04 18:00
  • 수정 2023.06.05 07:05
  • 기자명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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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고달픈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갈까? 월급의 일부를 모아 유럽여행을 떠날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하고, 조금 더 쾌적한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전세자금을 꼬박꼬박 저축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꿈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조금은 사치스러운 이상을 꿈꾸게도 한다. 팍팍한 삶만 생각한다면 너무나 우울하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위해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간다.

하지만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는 달콤한 꿈보다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현실세계로 내몬다.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투쟁하는 장애인들,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이 바라는 꿈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바로 생존이며 이는 그들의 절실함을 담고 있다.

농민도 마찬가지다. 농산물 수입자유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열악한 환경의 한국 농민들이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어가고만 있다. 지난해만 해도 484억1,000만달러(63조7,400억원) 규모의 농축산물이 수입돼 들어온 현실 속에서 농사지어 먹고 살기에 너무나 힘든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

2022년 300평당 마늘 생산비는 351만5,000원으로 2021년에 비해 7.5%(26만2,000원) 상승했다. 종묘비, 비료비, 농약비, 수도광열비, 노동비, 영농시설비 등 어느 것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다. 농업생산비가 늘었지만 농업소득이 증가했다면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전 언론에 공개된 것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2022년 통계청 농가경제조사 결과는 농가소득의 하락, 여기에 곤두박질한 농업소득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농가소득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지표에는 농업소득, 농외소득, 이전소득이 있다. 농민들이 점점 고령화되면서 늘어나게 된 각종 연금과 직불금 등이 포함된 이전소득은 증가했고, 이와 함께 농사 이외의 경제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농외소득도 증가했다.

씁쓸한 결과다.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에는 가족들 생계가 막막하니 식당일, 농기계 대행 작업 등 밤낮으로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벌어들인 소득은 늘어난 것이다. 실제 농가소득에서 가장 핵심인 농업소득은 하락했고 그 비중도 더욱 낮아졌다. 농가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외소득(41.6%)이고 그 다음으로 이전소득(33.0%)이며, 농업소득(20.6%) 순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업소득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데 더 하락했다는 것은 농업 현실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농민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농업전반의 정책결정 환경과도 연결돼 있다. 바로 농민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농민이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인데, 대표적으로 생산하는 농작물에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은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형성되는 경매가가 기준가격이 되고 있다. 하지만 품목마다 주산지의 산지공판장이나 농협 수매단가가 전국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늘이다.

마늘의 경우 난지형의 최대 주산지인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창녕농협 농산물공판장이나 가장 먼저 마늘을 수확하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농협을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대체로 7월에 햇마늘 경매가 시작되는 창녕보다 더 먼저 마늘을 수확하는 제주는 5월 중순경 가격이 결정된다. 얼마 전 제주 대정농협에서는 마늘 계약재배 수매단가를 1kg당 3,200원으로 지난해보다 1,200원이나 낮게 책정했다. 생산비가 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농협 수매가격은 지난해 4,400원에서 27.3%나 떨어진 것이다.

경매가, 수매가는 1년 동안 농사지은 농민에 대한 평가와도 같다. 값이 그나마 괜찮으면 농협에서 빌린 비료값, 종자값을 갚으며 농가부채를 그나마 줄여나갈 수도 있을 텐데 올해도 빚을 갚기는커녕 마이너스만 늘어날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먹거리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농민들은 어떻게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농산물 제값 받기는 애당초 힘든 일이니 일찌감치 스마트팜, 푸드테크, 수출농업에 편승해 살아가면 가능할까? 이를 위해 감당해야 할 엄청난 규모의 빚을 갚아나갈 환경은 마련될 수 있을까?

농업소득 하락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단지 가격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의 농정 방향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추진돼 왔는지를 평가해 볼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이 수치만으로 모든 걸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이 지속가능하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농민이 생존할 권리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며, 생산비 보장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소득 보장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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