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 농업·먹거리 질서에 맞설 무기, 농생태학

라틴아메리카 ‘핑크 타이드’ 물결 속 농생태학도 확산

  • 입력 2023.06.02 09:45
  • 수정 2023.06.02 09:5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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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미국이 주도해 온 신자유주의적 농업·먹거리 질서를 탈피하려는 세계 각국의 농민들이 대안농업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그 대표사례로서 라틴아메리카의 농생태학 실천 사례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선 핑크 타이드(Pink Tide, 분홍 물결이란 뜻), 즉 진보·반미 성향 정권의 잇따른 등장으로 인한 탈(脫)미국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남미의 대표적 친미국가로서 자국 농민 탄압에 앞장선 것으로 악명 높았던 콜롬비아에서도 지난해 진보 성향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당선됐으며, 브라질에선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극우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르 전 대통령을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다시 대통령이 됐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진보·반미, 또는 과거보다 미국에 ‘거리두기’하는 정권이 들어선 나라는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페루·볼리비아·가이아나 등이다.

눈여겨볼 점은 해당 국가들에서 최근 농생태학 실천사례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하루아침에 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농생태학 확산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곳곳의 농생태학 ‘운동’을 조직적으로 주도해 온 국제농민운동조직 비아캄페시나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비아캄페시나는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12군데의 ‘농생태학대학(IALA)’을 만들었는데, 이곳들이 농생태학 확산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의 평가다.

한편으로 라틴아메리카 핑크 타이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쿠바·베네수엘라 등은 미국의 경제 제재에 맞선 자립농업 발전방안으로서 농생태학 실천 노력을 기울인 바 있는데, 이 나라들이 타국에 농생태학 실천방안을 보급하는 데 앞장선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쿠바에선 2년에 한 번씩 ‘농생태학 국제 컨퍼런스’를 진행하는데, 이곳에서 농생태학을 배운 라틴아메리카 및 세계 각국의 농민·학생·연구자들이 농생태학을 자국에 보급해 온 것이다.

지난달 콜롬비아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회의 참가자들은 콜롬비아의 농생태학학교를 방문했다. 농생태학학교에서 한 어린이가 농장 내 퇴비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제공
지난달 콜롬비아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회의 참가자들은 콜롬비아의 농생태학학교를 방문했다. 농생태학학교에서 한 어린이가 농장 내 퇴비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제공

김정열 위원은 지난달 콜롬비아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회의 때 콜롬비아의 농생태학대학을 방문한 바 있다. 김 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대학은 콜롬비아의 농민운동가들이 친미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콜롬비아는 대지주가 소유한 토지에서 대량생산된 커피를 미국에 수출하며 외화를 벌어왔을 뿐 아니라 미국의 ‘마약 자판기’ 노릇까지 해왔던, 미국 주도 농업·먹거리 질서에 종속된 대표적 국가 중 하나였다. 콜롬비아의 농민운동가들은 친미 독재정권의 주된 탄압대상이었다.

콜롬비아의 농민운동가들은 옆 나라 베네수엘라로 가서 농생태학을 배웠고, ‘지역 내 순환농업’ 확산 및 ‘농민 주도하의 대안적 농업기술 확산’을 핵심 내용으로 삼는 농생태학이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체제에 맞설 무기임을 깨달았다. 콜롬비아 농민운동가들은 자국으로 돌아와 농생태학학교를 만들었고, 농생태학 실천에 동참하는 농민 수를 조금씩 늘려왔다. 그러던 중 콜롬비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됨으로써 ‘합법적 공간’에서 농생태학을 확산시킬 여지가 생겼다.

농생태학학교에서의 농생태학 실천방식은 우리나라 농민들이 실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게 김정열 위원의 설명이다. 채소 재배시 별도의 외부투입재를 사용하지 않고 지렁이 분변토 등 지역 내 자원을 활용하는 점, 지역 내 소농 가족공동체가 주체로 나선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눈에 띄는 점은 아이들이 농생태학 실천에 적극 참여한다는 점이다. 김 위원은 “아이들이 직접 농생태학적 방식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했다.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농작물 재배방식과 꿀벌의 생태적 활용방식 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벌도 키우더라”라며 “지역 사람들과 함께 농생태학을 확산시키며 지역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게 콜롬비아 농민운동 주체들의 설명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브라질의 농민운동 조직인 무토지농촌노동자운동(MST)에선 거대 자본가들이 투기자산으로 보유 중인 땅을 ‘점거’해 그곳에서 농사짓는 운동을 계속해 왔는데, 최근엔 점거한 땅에서 농생태학 실험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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