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저수지⑦ 목 타는 가뭄, 관정(管井)을 팠다

  • 입력 2023.05.28 18:00
  • 수정 2023.05.29 07:0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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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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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걸친 그 시기에는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농민들은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바라보며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궁리 끝에 나름의 대책을 내놓았다. 수리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 주민들의 가뭄극복 대책으로, 들판 곳곳에 관정(管井)을 파도록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당시의 관정은 거창하게 ‘수리시설’이라 부를 건덕지도 없이, 그냥 지름 일 미터 내외로 잘해야 오륙 미터를 파고 내려간 좁은 우물에 불과했다. 내부둘레는 일반 우물처럼 돌로 쌓아 올린 게 아니라 미리 콘크리트로 제작한 둥그런 관(管)을 실어다 포개 쌓아 올렸기 때문에, 콘크리트 대롱 모양의 우물 형태가 된다.

우리가 지금 저수지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에서도 동네 뒤편의 작은 저수지가 말라버리자, 여기저기 논바닥에다 관정을 파려고 시도를 했다. 땅속 깊숙이 파이프를 박아서 지하수의 유무를 확인한 다음에 땅파기를 시도하는 것은 한참 뒤에 했던 진화한 방식이고, 당시엔 땅속의 사정을 깜깜 모른 채로 순전히 인력으로 일단 땅부터 파 내려갔다. 그 시절에 장화리 이장을 맡았던 이용만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관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장담하기를, 저수지나 소류지는 가물면 말라버리지만 관정은 한 번 파놓으면 세상없어도 마르지 않으니까, 들판 군데군데에 관정을 만들어서 양수기로 물을 뿜어 올리면 가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아무리 파도 개뿔, 물이 나와야 말이지요. 헛고생만 했지.”

관정에 걸었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동네에 지하수의 맥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찾아갔던 2003년에도 지하수를 농업용수로 퍼 올려 쓰고 있었는데, 지하 150여 미터 깊이로 파이프를 박아서 땅속의 물을 퍼 올리는 방식이었다.

장화리 주민들을 화나게 만든 것은, 개심저수지 밑에 농지를 두고 있는 이원면의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가뭄에도 물 걱정 없이 저수지 물을 공급받아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턱밑에 저수지를 두고도 논밭에 물을 못 댄대서야 이것이 될 말이여?

-아암, 안 될 말이고말고. 우리도 양수기를 돌려서 저수지 물을 뽑아 올리드라고!

-수리조합 사람들이 뭐라고 시비를 안 걸지 몰르겄구먼.

-아, 남어도는 저수지 물 좀 끌어다 썼다고 설마 뭐라고 하겄어?

장화리 사람들이 작심을 하고서, 20여 미터나 되는 기다란 호스를 저수지에 연결해서는 양수기로 물을 뿜어 올렸다. 그런데 저수지의 물을 끌어올려 전답에 대는 것이 뭐가 잘못됐다는 얘길까? 아닌 게 아니라 양수기 소리를 듣고 수리조합 관계자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양수기 당장 꺼요!

-아니, 개심저수지에 물이 남어도는디, 고놈 쬐깐 퍼올려 쓰기로 뭣이 잘못됐단 말여?

-저수지 아랫동네 사람들이 이 물을 공짜로 쓰고 있는 줄 아시오? 다들 수리조합에 가입해서 수세를 바치면서 논에 물을 댄다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여? 왜 공짜로 물을 쓸라고 하느냐 이 말이여 시방!

그렇게 된 사연이었다. 사실 수리조합은 일제가 만들었고, 5.16쿠데타 이후에는 토지개량조합으로 개칭되었으나 농민들은 여전히 ‘수리조합’이라 불렀다. 사실 과도한 수세를 징수하여 농민들을 수탈하는 행태는 수리조합 때와 변함이 없었다. 드디어 1987년에 전남 해남의 농민들이 수세 거부 투쟁을 시작했고 그 저항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였다.

그런데 개심저수지의 위쪽에 농지가 있어서 수리조합의 가입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장화리 주민들은, 관정 굴착의 실패에다 저수지 물마저 끌어쓸 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래서 타들어 가는 볏논을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아니었다.

“까짓것 싸움이 나거나 말거나 한밤중에 나가서 양수기로 막 퍼올려서 논물을 댔지요.”

이후 상당수 농가가, 사연 많은 벼농사를 작파하고 과수 농사로 작목을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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