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철쭉평원에서 지리 능선을 바라보다

  • 입력 2023.05.28 18:00
  • 수정 2023.05.29 07:04
  • 기자명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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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내 삶의 나침반 지리산은 언제나 옳다.
황매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내 삶의 나침반 지리산은 언제나 옳다.
일몰이 산청 쪽이라면 일출은 합천 쪽, 구도자를 닮은 사람들의 뒷모습 또한 예술이다.
일몰이 산청 쪽이라면 일출은 합천 쪽, 구도자를 닮은 사람들의 뒷모습 또한 예술이다.
저녁 7시쯤에 만난 노을, 언제 어떤 색감일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저녁 7시쯤에 만난 노을, 언제 어떤 색감일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황매산 철쭉이 필 무렵 만개하는 합천 오도리 이팝나무.
황매산 철쭉이 필 무렵 만개하는 합천 오도리 이팝나무.

해마다 오월 초순이면 한반도의 남쪽부터 꽃을 피우며 북상하는 철쭉은 이 땅의 봄이 깊어간다는 걸 알리는 파수꾼이다. 이즈음 지리산 자락 바래봉과 형제봉에서 철쭉제가 열린다. 하지만 필자는 철쭉이 활짝 필 무렵이면 뒷동산 마실 가듯이 황매산을 오른다.

그것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 오른다. 철쭉을 배경으로 황매평원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노을에 물들어 가는 장쾌한 지리산 주 능선을 바라보는 그 감동은 말로써 형언하기 어렵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때 더 아름다운 지리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철쭉의 어원은 한자어 머뭇거릴 ‘척’ 머뭇거릴 ‘촉’()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수로부인에게 꽃을 받쳤다는 내용의 헌화가에 등장하는 그 철쭉이다. 바래봉 철쭉은 박정희 대통령이 호주의 면양농장을 방문했다가 우리나라에서도 면양을 키워보라는 지시로 1971년 국립종축원이 있던 바래봉에서 면양을 방목하기 시작했는데 왕성한 식성의 면양들이었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지 않아 현재의 철쭉이 바래봉 일대를 점령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황매산 철쭉은 1980년대 초 황매산에 소를 방목하면서 철쭉만 남게 되었는데 당시 합천이 고향이던 전경환 새마을운동본부 사무총장과 관련이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바래봉과 황매산 철쭉 군락지를 보면서 생물다양성의 측면에서는 건강한 숲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황매산 철쭉들 사이에 한두 그루씩 자라는 떡갈나무가 참 반갑고 철쭉 아래에서 다소곳이 꽃을 피우고 있는 물매화, 광대수염, 노랑제비꽃, 매화말발도리 등이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바래봉이든 황매산이든 엄밀하게 말하면 철쭉보다는 산철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산철쭉은 잎이 좁고 끝이 뾰족해지는 형태인데 철쭉은 거꾸로 된 달걀 모양의 동글동글한 잎이 가지 끝에서 4~5개가 모여 달리기 때문에 철쭉과 산철쭉은 확연히 구분된다. 그렇지만 축제 명칭을 산철쭉제라고 하는 것보다 그냥 철쭉제가 입에 붙었기에 더이상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다.

노을에 물들어 가는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는 황홀함은 철쭉이 피는 시기만큼이나 억새가 출렁대는 가을 또한 충분히 감동적이다. 우뚝 솟은 천왕봉은 지리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기에 더욱더 그러하리라. 하늘을 떠받친 채 언제나 그 자리 그렇게 지키고 있는 지리산.

하지만 2023년 5월의 지리산은 케이블카에 산악열차 그리고 골프장까지 곳곳에 도사린 개발 위협으로부터 위태롭기 짝이 없다. 아무 걱정 없이 저 지리 능선을 맘 편히 바라볼 날이 언제쯤에나 올는지….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해서 22년째 유정란 농사를 짓고 있는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의 지리산 자락 사진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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