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건대’ 30년 지기 동문들, 농활대로 똘똘 뭉쳐

부족한 농촌 일손 도우러 방방곡곡 선후배 집 순회

암투병 선배 농사 거들다 지난해 본격 농활대 출범

"농사짓다 겪는 고비, 단체로 해결해주니 고마워"

  • 입력 2023.05.26 11:53
  • 수정 2023.05.26 14:24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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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오늘은 하우스 안에 작물 치우고 비닐 걷고 멀칭작업까지 해요. 참, 파이프 꽂는 것도 할 거예요.”

“먹으라고 해 놓고 왜 또 일 시켜, 소문대로 쉴 틈을 안 주는 주인이네.”

지난 20일 오후 충남 부여군 옥산면 일대 한 하우스 안에서 6명의 ‘일꾼’들이 왁자지껄 작업 중이다. 숙련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는 아주 능숙하고 누구는 다소 서툴다. 그중엔 ‘입으로’ 일을 하는 이도 있다.

이날 농사를 도우러 나선 일꾼들은 하우스 주인인 신지연씨와 최소 30년 지기 대학 동문들이다. 이름하여 ‘청년건대 농활대’. 5월의 농활대가 낙점한 신씨의 하우스 한 동은 참깨농사를 짓기 위해 이전 작물인 브로컬리 잔여물을 치우고 점적호스들을 양쪽으로 묶어 정리하는 일, 밑거름을 뿌리는 일 등이 필요했다. 또 다른 하우스는 멀칭하고 파이프 지지대를 꽂는 등 멜론 모종을 심을 수 있도록 다양한 작업을 했다. 이날 처음 참석한 서정삼씨는 파이프 지지대를 항타기로 박느라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썼다. 파이프에 체중을 싣듯 연거푸 내리치고 발뒤꿈치를 들면서 몸을 활처럼 만들어 힘을 주고 누르기를 여러 번 해야 1개가 고정되는 ‘고된’ 일이다.

청년건대 농활대는 지난 20일 충남 부여군 옥산면에 사는 동문 신지연씨의 하우스에서 작업을 도왔다. 5월의 농활대원인 오병선·서정삼·김희준·김명진·김도윤·박기동(왼쪽부터)씨.
청년건대 농활대는 지난 20일 충남 부여군 옥산면에 사는 동문 신지연씨의 하우스에서 작업을 도왔다. 5월의 농활대원인 오병선·서정삼·김희준·김명진·김도윤·박기동(왼쪽부터)씨.

 

제일 연장자 농활대원인 오병선씨는 “차광막 씌우는 거 내일 아침에 하지 말고 지금 하면 좋겠다”면서 잠깐 앉아 쉬던 후배들을 일으켜 세웠다. 여럿이 하니 생각보다 뚝딱 차광막이 지붕을 감싸고 하우스 안엔 그늘이 생겼다. 한여름 일할 때 덜 지치면 좋겠다는 일꾼들의 마음 씀씀이는 차광막에 이어 “작은 냉장고 하나 사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물론, 주인장은 ‘덥기 전에 일 끝내고 나가는 게 장땡’이라며 거절했다.

계획된 일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거의 모든 농활에 참석해 온 박기동씨는 “과거 농활처럼 고단한 삶을 체험한다는 걸 전제로 하면 지속하는 게 불가능하다”면서 “농촌에 와서 노동의 신성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 노동이 부담스러운 사람 모두 자기 역할을 맡도록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활 첫날 저녁엔 인근에서 농사짓는 동문들이 모여 안부를 묻는 것도 이 모임의 특징이다. 이날엔 서울서 늦게 도착한 이들을 합해 20명 가까이 함께했다.

멜론을 심기 전에 필요한 작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혼자서 하면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여럿이 하니 빨리 마무리 됐다.
멜론을 심기 전에 필요한 작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혼자서 하면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여럿이 하니 빨리 마무리 됐다.

 

김희준 건국대민주동문회 청년건대 회장은 “청년건대 소모임 중 ‘농(農)자모임’은 전통이 꽤 깊은데, 새해 첫 번째 주말에 전국을 순회하며 정기모임을 한다. 2020년까지는 농자모임 소속 몇몇이 충북 음성에서 암투병 중인 선배의 농사를 도우러 다녔었다. 코로나로 2022년엔 온라인 모임을 했는데, 거기서 정식 농활대 출범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출범 첫해엔 충북, 전북 등 4곳을 방문했고, 올해는 지난 3월 경기 양평, 5월 충남 부여에 이어 6월엔 충북 괴산에서 농활을 한다. 김희준 회장은 “가을엔 김제, 음성 등 거의 매달 농활을 갈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은 등산 대신 농활 가면 좋지 않겠냐”고 웃었다.

농활대장을 맡고 있는 김도윤씨는 “학교 다닐 때 농활을 정말 열심히 다니기도 했고, 먹거리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농업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깊다. 논, 밭, 하우스에서 학창 시절 추억부터 현재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정말 쉼 없이 이야기 나눈다. 조금 도왔는데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기도 미안하기도 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농활 일정이 잡힐 때마다 ‘매번 망설인다’는 고백도 했다. 온전히 쉴 수 있는 주말이 한 달이면 한두 번에 불과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결국 농활준비를 하게 된다고 한다.

브로컬리를 걷어낸 뒤 참깨를 심기위해 점적호스들을 모아 하우스 양쪽으로 정리하고 있다.
브로컬리를 걷어낸 뒤 참깨를 심기위해 점적호스들을 모아 하우스 양쪽으로 정리하고 있다.

 

농활대 도움을 받은 동문들 마음은 어떨까. 부여의 한 농민 동문은 “도시에선 농업·농촌·농민의 어려운 현실을 방관하기 쉽다. 하지만 농자모임을 하고 나면 돈독해지는 걸 매번 확인한다. 아프거나 다쳐서 농사를 못 지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그때마다 농활대는 만능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다. 우르르 와서 농사일을 돕거나 농산물 소비자로 나서주니, 농촌현장을 떠나지 않고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뒷심이 된다는 걸 꼭 얘기하고 싶었다”고 자부했다. 청년건대 농활대의 구슬땀이 농촌의 숨통을 터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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