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70] 사과 농장의 5월

  • 입력 2023.05.28 18:00
  • 수정 2023.05.29 07:05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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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사과 농장의 5월은 매우 중요하고 바쁜 시기이다. 이제야 겨우 깨달은 사실이지만 1년 사과농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시기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많은 과수농가들이 그렇듯, 3~4월의 냉해와 꿀벌 개체 수 감소에 따른 부실한 수정으로 노심초사 그 자체다. 다행히 이곳 영동지역은 냉해는 별로 없어 보인다. 꽃피고 수정이 될 즈음 다른 지역만큼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그 대신 벌들이 잘 보이질 않아 애태웠으나 그런대로 수정도 무난한 것 같다.

이제 수정이 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적화(꽃솎기)작업을 하게 된다. 한 측지(가지)에 실제로 키우려는 과일의 개수를 결정하고 나머지 꽃은 따주는 작업을 말한다. 예컨데 꽃봉우리는 5개지만 실제로 3개만 키우려고 판단하면 2개의 꽃은 따준다는 의미다.

적화작업을 끝내고 2~3주 정도 지나면 적과(열매솎기)작업을 해주게 된다. 남겨 놓았던 한 개의 꽃봉우리에서 5~6개의 열매가 맺히는데 이들 중 중심화라고 하여 한가운데 실하고 잘생긴 열매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열매는 모두 제거하는 작업이다. 손으로 비틀어 제거할 수도 있고 가위로 잘라낼 수도 있다.

이런 적화·적과 작업은 손으로 하나하나 해 줘야 하는 일이다. 관행 농사인 경우 약품처리로 적화나 적과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명색이 유기농이니 그리할 수는 없다.

적과작업이 끝나고 두 주 정도 지나면 알이 조금 굵어져 대추알만 해질 때면 사과 전용 이중봉지를 씌우는 작업을 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시도해 보았는데 소비자에게 건넬 수 있을 정도의 상품성 있는 사과를 생산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금년에는 당연히 모든 사과에 봉지를 다 씌우기로 했다.

또 4~5월엔 혹진딧물 방제에 진력해야 한다. 혹진딧물은 가지 끝 성장점이 있는 쪽 잎사귀들을 돌돌 말아 고사시켜 농민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멘토께서 권해준 유기 약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금년에도 지금까지 잘 막아내고 있다.

또한 요즘 사과나무의 에이즈라 불리는 화상병이나 노균병 등도 방제해야 하는데 유기농 방제 수단으로서는 자닮유황과 자닮오일을 한두 차례 살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괜찮다.

이뿐 아니라 5월에는 어린나무의 측지 및 결과지 유인작업도 해야 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도장지 제거 작업도 시작해야 하는 시기다. 또한 나무 별 수세에 맞춰 수세가 너무 센 나무에는 용과린이나 염화가리 같은 미량원소를 살포하기도 하고, 약한 나무에는 생선액비나 아미노산 등 질소가 함유된 영양분을 토양시비를 하거나 옆면시비를 시행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사과 과수원의 5월은 할 일이 많아 늘 종종걸음이다. 그래도 친환경 유기농사는 자연에 순응하며 환경을 지키고, 정직하게 땀 흘리며 성실해야 적지만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나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자연과 생태계를 거역하고, 정직하지 않으며 잔꾀나 부리고, 얄팍한 편법으로 땀 흘리지 않으면 자연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힘들어도 나는 그래서 농사일이 보람차다. 머리 굴려 남에게 피해 줄 일 없어서 좋고, 나날이 노쇠해가는 몸과 마음을 사용할 곳이 있어 좋다.

이 땅의 모든 농민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보람차게 농사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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