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계산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 에너지 자립시 독일 빌트폴츠리트를 다녀와서

[기고] 정철균(진주시농민회 조직교육위원장)

  • 입력 2023.05.21 18:00
  • 기자명 정철균(진주시농민회 조직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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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균 진주시농민회 조직교육위원장
정철균 진주시농민회 조직교육위원장

유럽의 농민들은 어떻게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고 있을까? 내가 서 있는 현실의 막막함을 넘어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농사를 짓기 위해 조그만 단초라도 찾고 싶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대산농촌재단 유럽농업연수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12박 14일의 많은 방문지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곳은 바로 독일 바이에른주의 에너지 자립시(市) 빌트폴츠리트였다. 기후위기 파고 속에 화석연료의 한계가 분명하고, 고갈의 상황은 우리가 맞이할 필연적 미래의 모습이다. 내가 사는 진주는 특히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수출농업, 겨울철 난방을 통한 시설하우스로 다수의 농민이 먹고사는 지역이다 보니 이 마을은 확실히 충격적 현장이었다.

몇 해 전 주민들은 배제되고 외부 자본의 수익만을 위해 무리하게 농지를 훼손해가며 태양광 발전을 추진하다가 거센 저항을 맞았고, 풍력발전기 설치를 두고 소음 문제, 마을의 경관 훼손 등을 우려한 지역민들과 마찰 사례를 일으키는 등의 우리 모습과는 사뭇 대비됐다. 이 지역으로 가는 동안 차창 밖은 끝없는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고, 마을에 도착하기 전 언덕쯤에는 풍력발전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우리를 환영하는 듯했다.

지난 3일 이 지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안내자는 ‘마이바움 행사’를 설명해줬다. 마이바움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전통행사였다. 우리나라의 정월대보름 달집사르기 행사로 보면 될 듯했다. 수십 미터 높이의 나무에 주민들의 직업을 그림 간판으로 장식하고 이 나무를 함께 세우며 마을의 단합과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 없이는 행사가 불가능하기에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안내자는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안내센터에서 에너지 자립시를 설명하는 토마스 프뤼거 시의원.
안내센터에서 에너지 자립시를 설명하는 토마스 프뤼거 시의원.

빌트폴츠리트 시는 약 2,600명이 거주하는 작은 지역이다. 지난 2000년 이곳 의회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성한다’, ‘우리가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산화탄소를 줄인다’ 등을 담은 사명 선언문을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재생에너지 자립도시로 가기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현재 바람, 태양, 물, 나무, 바이오가스 등의 재생에너지를 통해서 828%의 전기를 생산하고, 60%의 난방을 자체 공급한다. 연간 100개국 이상의 그룹이 이 지역을 방문해 사례를 배우고 있고, 유럽 최고 에너지 공동체로 인정받고 있다.

에너지 자립 도시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의 핵심은 주민 참여였다. 반대하는 사람은 설득하고, 발전 시설에 대한 투자 및 수익금 배분은 오직 지역 주민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혜였다.

에너지 자립 지역답게 공공건물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또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를 줄이기 위해 플러스 에너지 하우스로 건물을 지었는데, 우리가 방문한 이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집이 그런 방식으로 최근 지어져 있었다.

알프스산맥과 인접한 지역이라 겨울은 영하 20℃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2005년부터 펠릿으로 공동난방을 시작하고, 4km 떨어진 곳에 있는 가축분뇨를 저장하는 탱크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이용해 2020년부터 난방용으로 사용 중이다. 가축분뇨는 대부분 가스화하고 남은 것은 농사에 사용해 땅으로 돌아간다. 이를 통해 연간 35만리터의 기름을 절약하며, 이 지역에는 겨울철 난방을 위한 기름차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현재 이곳엔 풍력발전기 11기가 가동되고 있다. 많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풍력발전기 날개는 더 커지고 높이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풍력발전기는 30년 이상 사용이 가능한데, 10년이면 원금을 되찾고 남은 20여년은 수익으로 남는다. 최근 새로 건설한 풍력발전기에는 주민 400여명이 투자에 참여했다.

재생에너지로 이 마을에서 얻는 연간 수익은 700만유로(한화 약 101억원) 정도. 이 수익금은 지역에 재투자되고, 주민들에게 배분된다. 지역에 돈이 돌고 사람이 모이고 다시 또 큰 계획을 수립하며 지속 가능한 지역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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