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㉖] 생선구이로 남은 시장, 고흥오일장

  • 입력 2023.05.21 18:00
  • 수정 2023.05.21 20:11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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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전통시장 상설시장의 전경.
고흥전통시장 상설시장의 전경.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이상하게 오일장 가는 날에 비가 자주 온다. 고흥오일장에 가는 날도 전날부터 비가 와서 물건 파시는 분들이 많이 안 나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막상 가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고흥오일장은 4일과 9일에 서는 장으로 장흥이 서울의 정남향에 있는 곳이라면 고흥은 내가 살고 있는 남원의 정남향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 끝 육지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지역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섬들이 바다 위에 꽃처럼 떠있어 여행하며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큰 곳이다. 제법 시설이 괜찮은 숙소를 찾을 수 있어서 하루 일찍 출발해 녹동오일장도 잠시 둘러보고 근처 바다 구경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일행은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을 수소문하여 아침부터 먹었다. 시장 안에 있는 생선구이집으로 들어갔는데 구운 생선을 찜기에 쪄서 상을 차려주셨다. 민어조기와 양태구이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밖에서 마침 숯불을 피워 생선 굽는 걸 보면서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궁금증을 풀기도 했다. 이 식당 고유의 생선 굽는 방법은 숯불 바로 아래 물을 넣어 온도가 급하게 올라가는 것을 막고 연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같은 방법으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숯불로 굽는 식당에서 경험한 쾌적한 실내의 비밀 같은 비법으로 고흥시장에서는 생선을 굽고 있었다.

장터를 돌다가 그곳 어른들이 쎄미라 부르는 쑤기미를 만났다. 지느러미가 엄청 거칠고 날카로워 조금만 방심하면 손을 찔릴 수가 있는데 찔리면 그 통증이 대단해서 꼭 병원엘 가야 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는 쑤기미 등쪽의 지느러미를 모두 제거한 상태로 팔고 있었다. 모험심이 좀 강한 나이지만 그 아픔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처에 있던 분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매운탕으로 먹는 게 최고라 하시니 매운탕을 끓이려고 다 싸달라고 해서 구입했다. 비가 오니 어쩐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참숯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생선들.
참숯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생선들.

 

고흥장 한 생선가게의 매대.
고흥장 한 생선가게의 매대.

 

 

두 개의 건물 동으로 되어 있는 고흥오일장, 그중 한 동 안팎의 스무 개 남짓한 가게들은 모두 참숯을 피워 다양한 생선들을 구워 팔고 있었다. 고흥오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남들은 자고 있을 이른 새벽에 나와 숯불을 피우고 오후 늦게까지 생선을 굽는다고 한다. 숯 한 가마니를 하루에 다 쓴다고 하는데 생선을 하나도 태우지 않고 연기도 안 나게 정말 잘도 구우신다. 다 구운 생선은 마지막에 참기름을 발라 수분의 증발을 막고 윤기를 더해 준다. 더러는 깨를 뿌려 놓기도 한다. 처음엔 고흥 출신의 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이 주문을 해서 먹었다는데 이제는 전국에서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니 택배를 보내는 일로 하루가 그저 화살처럼 빠르게 간다고 한다. 시조카들과 며느리, 그렇게 셋이서 생선구이가게를 운영한다는 젊은 친구들도 있다. 한국인의 밥상이란 프로에도 출연을 했다고 한다. 셋이서 같이 하는데 돈벌이는 잘 되냐고 물으니 제법 잘 된다고 한다. 다행이다.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식육점의 상인들.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식육점의 상인들.

 

인구는 줄고 시장은 자꾸 사그라드니 한 집안에서 몇 개의 가게를 하기도 한다. 생선구이집이 젓갈집도 하고, 정육점이 국밥집도 같이 하는 등 어찌 보면 재미난 장터 같기도 하다. 돼지머리를 삶아 눌러 파는 정육점 앞에 앉아 뼈 바르는 모습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가 국밥집으로 달려가 돼지머리편육과 소머리국밥을 시켜 맛을 보았다. 그러다 속이 불편해져 비도 오고 하니 따뜻한 커피를 마시자며 도로에 면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젊은 친구가 커피를 내려주는데 커피가 나의 취향에 딱 좋다. 주인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쌍방울카페란 간판이 붙어 있다. 그 옆으로 쌍방울국수집이 있다. 카페에서 국수도 파나 하는 생각도 잠시 카페 안쪽 계단 아래 시장쪽으로 국수를 삶는 모습이 보인다. 사연을 물으니 할머니가 하시던 쌍방울이란 속옷가게를 어머니가 물려받아 국수집으로 하다가 이제 딸에게 물려주고 뒤에서 국수를 팔고 있다고 했다. 세련되지 않으나 할머니의 가게를 잊지 않으려고 쌍방울로 했다고 한다. 이야기가 있어서 더 좋은 오일장이다.

돌아오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시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인데 아직 다 팔지 못한 채소를 앞에 놓고 앉아 계신 할머니가 계신다. 카페주인에게 따뜻한 음료 한 잔 값을 주고 할머니 몸 좀 녹이시게 해드리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파장 분위기 속에서도 빗속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할머니.
파장 분위기 속에서도 빗속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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