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우리농장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맞으며

  • 입력 2023.05.21 18:00
  • 기자명 원혜덕(경기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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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덕(경기 포천)
원혜덕(경기 포천)

봄이 무르익는 5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농장에는 대안학교인 발도르프학교 아이들이 많이 온다. 발도르프학교는 농업을 중시하는 학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교사와 아이들이 같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 몇십 평 정도 작은 텃밭이 있는 학교도 있고 100평이 넘는 땅에 농사짓는 학교도 있다. 3학년 담임교사는 1년간 아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농사를 한다. 요즘의 일반학교 교사들이 농사에 대해 모르듯이 발도르프학교 교사들도 기본적으로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아이들과 농사로 1년을 씨름해야 하기에 열심히 배운다. 나름 여러 가지 작물을 기르는 데 외딴 조그만 논을 빌려 벼까지 기르는 교사도 보았다. 어느 해는 여러 발도르프학교 3학년 담임교사들이 농사에 대해 배우려고 연초에 우리 집에 와서 남편에게 질문도 하고 농사에 대해 듣고 돌아간 적이 있다.

아이들은 농장에 와서 일한다고 모자, 장갑 등을 준비해 오지만 실제로는 소풍 온 듯이 즐거워한다. 담임교사는 아이들에게 일을 많이 시켜달라고 하지만 자연의 일부인 농장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루나 이틀 머무는 동안 나는 실컷 놀게 한다.

그러나 남편 설명을 들으며 농장 전체를 찬찬히 돌아볼 때나, 한 시간 정도 농사 실습을 할 때에는 열심히 하도록 한다. 때에 따라 씨를 넣기도 하고, 모종을 옮겨심기도 하고, 밭에 난 풀을 뽑기도 하는데 어떤 일이건 농사일을 장난처럼 하지 않고 진지한 자세와 마음으로 하게 한다. 내가 그러한 마음을 갖고 아이들을 대하면 아이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을 느낀다. 사실 어린 아이들이 밭에 들어가면 작물을 밟거나 부러뜨리기 일쑤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우리 농장에 와서 지내면서 자연을 느끼고 농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하려는 학교와 교사들의 뜻에 공감이 되기에 농장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는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농사 실습도 곧 시작된다. 일반학교가 아니라 대안학교의 상급학년이거나 농업학교다. 이 경우에는 2주 혹은 1주간 농장에 머물며 농사일을 한다. 학생들을 여러 날 데리고 있는 것이 큰일이지만 농사를 어느 정도라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남편과 나는 농사일로 바쁘지만 맞아들인다.

농장에 며칠 머물렀던 학생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도 아니고 상급학년도 아니고 일반학교로 치면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학년이었다. 그 학생들의 담임교사는 3일간 농장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어린 나이들이 아니니까 일을 많이 시켜달라고 했다. 별에 대해 배우는 교육과정이 있어서 밤에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우리 농장에 오려고 하지만 농사일도 많이 해보게 하고 싶다고 했다. 대개의 아이들은 동물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아이들은 특히 그랬다. 남편에게 소집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들어가서 소가 자기들이 뜯어온 풀을 먹는 것을 보거나 소를 쫓아다녔다. 아이들은 살아있는 소를 난생 처음 가까이서 본 것이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가서 자기들끼리, 그리고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했다는 말을 선생님이 내게 전해주었다.

“소와 친구처럼 같이 놀았는데 이 소들이 소고기하고 같은 것이라는 것을 문득 알았다. 너무 놀랐다. 소고기가 살아있는 소였다니! 이렇게 멋진 소를 내가 먹었다니!”

그 말을 전해 듣고 내가 놀랐다. 요즘 아이들이 먹거리에 대해 아무리 모른다 해도 소와 소고기가 별개인 줄 알고 있었다니. 그러나 대견한 마음은 더 컸다. 살아있는 소를 마주 대했던 아이들은 고기를 먹는 것, 곧, 생명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진지해졌다는 말도 이어서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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